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 건설지역에 대한 논란이 날로 들끓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당근'으로 제시한 양성자 가속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실제로 전남 장흥군, 영광군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덤으로 끼워주는 '양성자 가속기가 들어서면 관련 첨단연구소와 산업체가 함께 따라와 획기적인 지역 발전의 모멘텀을 마련할 것으로 보고 핵폐기물 처리시설 유치문제를 신중히 검토중이다. 정부가 2012년까지 1,286억원을 투입하는 1억eV(전자볼트)급 다목적 양성자 가속기 건립이 마무리되면 연평균 6억달러의 수입 대체와 2억6,000만달러의 수출 등 모두 1조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전망이다. 양성자 가속기가 과연 뭐길래….어떻게 만드나
20세기에 등장한 양자이론은 전자, 원자핵, 전기전자, 원자력, 레이저 등을 기반으로 한 산업기술이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반면 21세기에는 분자와 원자 단위의 연구가 BT(생명공학기술), IT(정보통신기술)등의 발전으로 이어져 일상생활에 큰 변혁을 불러올 전망이다.
이를 위해 분자와 원자를 관찰하고 가공하는 수단이 필요한데 이 역할을 하는 것이 이들보다 크기가 수십만 분의 1에 불과한 양성자와 중성자다. 이제는 원자핵에서 중성자와 양성자를 떼내 조작·활용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기술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양성자 가속기다.
양성자 가속기는 원자 속의 양성자를 분리, 빛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加速)해 원자핵 등과 충돌시키는 장치다. 보통 수소를 방전해 얻는 양성자는 가속기 능력에 따라 에너지를 키울수록 속도가 증가하고 물질과 충돌할 때 전달되는 에너지도 늘어난다.
1,000V 전압으로 가속된 양성자는 1,000eV의 에너지를 얻는다. 이 경우 양성자는 초당 5,000㎞ 속도로 움직이는데 양성자가 물체와 충돌하면 물체의 여러 원자층을 뚫고 들어가 에너지를 잃으면서 어느 특정 위치에 박힌다. 양성자 에너지가 클수록 더 깊숙이 물질 속으로 들어가는데 물질은 양성자가 지나간 자취에 따라 결정구조가 바뀌어 새로운 물질이 생성된다.
에너지가 10MeV(1,000만eV) 이상 되면 양성자는 초속 5만㎞ 속도로 이동하면서 물질 속으로 더 깊게 들어가고 심지어 이를 구성하는 원자 내부에 들어가 핵과 반응한다. 이로 인해 원소가 다른 원소로 바뀌는데 이를 활용해 의료나 산업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만든다.
에너지가 100MeV 이상 되면 양성자는 초속 13만㎞ 속도가 된다. 이 정도면 납과 같은 무거운 원소의 핵과 충돌해 핵을 깨부순다. 핵이 깨지면서 방출되는 많은 중성자와 양성자로 새로운 동위원소를 얻는다. 에너지가 더 커져 1GeV(10억eV) 이상 되면 양성자의 속도는 광속(초속 30만㎞)에 근접한 초속 26만㎞나 된다. 이 양성자가 원자핵과 충돌해 핵자보다 더 작은 중간자와 중성미자 등의 소립자가 만들어 진다. 이를 통해 물질세계의 근원을 규명할 수 있다.
어디에 활용되나
양성자 가속기는 기초과학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된다. 양성자 가속기의 제일 앞부분에는 수소원자로부터 전자를 떼낸 양성자를 가속기로 쏘아주는 입사장치가 있다. 이 장치에 쓰이는 기술을 응용하면 수소 대신 질소, 아르곤, 산소 등 다른 기체나 화합물을 이온화해서 가속할 수 있다.
이 이온을 각종 재료에 충돌시키면 표면 가공이나 질의 변화가 생겨 신소재를 만들 수 있다. 이온 빔 장치들은 이미 반도체 제조의 불순물 도핑(주입), 금속 재료의 내구성 향상 등에 쓰이고 있다.
또한 양성자 빔으로 극소 물체를 측정하고 분석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표면의 원자를 떼낼 수 있다. 대표적인 기술로 반도체 웨이퍼를 만드는데 활용되는 '스마트 절단기술'.
각종 전기제품의 전력반도체 소자에 흐르는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는데 역시 양성자 빔이 활용된다. 양성자 빔을 전력반도체 소자에 수MeV 정도 쬐면 그 안에 양(+)전하를 띤 양성자가 박히는데 그러면 전력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박힌 양성자는 마치 시냇물의 돌다리 같은 역할을 한다. 전자가 소자 내부를 한번에 뛰어 넘지 않고 양성자라는 돌다리를 통해 좀더 쉽게 이동한다는 뜻이다.
최근 양성자를 돌연변이에 이용하는 기술이 개발됐다. 식물에 양성자 빔을 가하면 유전자가 변형되면서 새로운 유전형질을 가진 돌연변이를 만들 수 있다.
또 양성자 가속기로 폭약에 다량으로 포함돼 있는 질소 성분을 탐지할 수 있다. 질소의 원자핵은 특정 에너지의 감마선과 반응하면서 이를 흡수한 다음 다시 내보낸다. 이때 반사되는 감마선을 탐지하면 폭발물의 크기와 위치를 알 수 있다.
암치료에도 양성자 빔을 이용한다. 암 치료를 위해 X선과 전자 빔을 이용한 방사선 치료가 쓰였는데 양성자 빔을 이용하면 가장 정확히 암세포를 공격하면서 주변의 정상세포는 영향을 적게 준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도움말=최병호 양성자기반공학기술개발사업단장, 조용섭 양성자기반공학기술개발사업단 선임연구원, 이정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도움말=최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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