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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길위의 이야기/직업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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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길위의 이야기/직업정신

입력
200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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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문사에 전해 오는 얘기라고 들었다. 유능한 번역가가 있었다. 이름은 모르겠고 성을 '박'이라고 하자. 신문사에서는 박에게 외신을 번역하는 일을 맡기곤 했는데 팩시밀리가 없던 시절, 기사를 들고 박에게 왔다 갔다 하는 일은 신참들이 하는 게 보통이었다. 번역감을 가지고 박에게 전화를 걸면 박은 먼저 번역료가 얼마인지 물었다.기사의 성격상 화급한 번역이 필요하면 번역료는 올라가게 마련이었다. 다른 신문사도 박에게 의뢰하는 경우가 많았을 터이니 경쟁의 원리로 보아도 최고 수준의 번역료를 지급하는 게 당연하다. 박은 그런 원고는 시간에 맞춰 재빨리, 손 하나 댈 것도 없는 깨끗한 문장으로 번역해 주었다.

반면 시간이 걸려도 괜찮은, 누가 번역해도 되는 기사인 경우에는 번역료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도 박은 절대 거절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기 할 일을 다하고 난 뒤에야 번역하되 담당 기자가 머리를 쥐어뜯도록 난해하고 손볼 데가 많은 번역 원고를 넘겨주곤 했다. 그러면 그 담당 기자는 그 다음부터는 번역료를 올리는 일에 앞장서게 마련이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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