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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지금 "총체적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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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지금 "총체적 위기"인가

입력
200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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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체적 위기론'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화물연대 파업, 교육행정 정보시스템 시행에 반대하는 전교조의 투쟁, 5·18기념식을 수라장으로 만든 한총련 시위, 청와대가 방미중인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못한 근무태만 사례 등이 겹치면서 뒤숭숭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그러나 위기감의 본질은 파업이나 갈등이 아니다. 한총련과 전교조 사태는 해묵은 과제이고, '총체적 위기'니 '총체적 난국'이니 하는 말도 역대 정권 아래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말이다. 이번 위기감은 "과연 정부가 국정운영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는 우려에 집중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총련 사태에 유감의 뜻을 전하러 온 5·18행사 추진위원들에게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위기감이 든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이런 태도, 이런 식 화법이 바로 불안을 증폭시키는 가장 큰 요인이다. "대통령을 못해 먹겠다"는 말을 액면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아니다. 5·18행사 추진위원들 중에는 과거 민주화운동 출신이 상당수 있기 때문에 마음 놓고 털어놓은 하소연으로 볼 수 있다. 국정운영의 어려움보다는 어제의 동지들에게 공격 당하는 고통을 호소하다가 나온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 어디에 다른 자리도 아닌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고 말하는 대통령이 있겠는가. 사석에서도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공식석상에서 털어 놓다니 도대체 대통령이란 자리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가.

대통령은 국민이 해주시오, 해주시오 청해서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자리가 아니다. 자기 자신이 시켜주시오, 시켜주시오 졸라서 국민이 시켜주는 자리다. 나를 뽑아주면 훌륭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맹세한 것이 불과 몇 달 전인데, 지금 국민 앞에서 감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대통령의 언행이 신중하지 못하고, 옛 동지들과의 파경을 지나치게 가슴아파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불안의 원인이다. 파경을 가슴아파 하다가 언제 방향을 바꿀지 모른다는 우려가 널리 퍼져 있다.

대미관계에도 그런 불안이 깔려있다. 대통령은 방미 기간 중 그간의 반미색채에 대한 우려를 씻고 미국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했다. 나라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하지만 미국에 대해 진심으로 호감을 갖게 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대통령이 미국에서 '혈맹관계'를 강조할 때마다 많은 국민들은 그가 귀국 후 지지세력에게 자신의 발언을 설명하다가 말을 뒤집게 될까 봐 걱정했다. 그렇게 되면 방미 성과가 물거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성급한 우려였다. 국민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대통령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식의 발언을 언제까지 이해해 줄 수는 없다는 것, 그것이 문제다.

대통령은 스스로 '비주류 출신'의 약점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 대통령의 강점이다. 그는 취임 후 석 달 동안 돌출 언행으로 국민을 당황하게 만들고 실망시키기도 했지만 그가 나라에 대해 '순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인상을 심었다. 그것 또한 그의 강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순정만으로 국정을 운영할 수는 없다. 지지세력의 도움만으로 버틸 수도 없다. 대통령은 어떤 세력과의 밀월관계에 집착하지 말고, 정도를 걷는 것으로 힘을 축적하고 지지기반을 넓혀가야 한다. 국민의 대다수는 잠재적인 개혁세력이다. 방향이 옳다면 기꺼이 개혁에 동참할 준비가 되어있다. 비주류 출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던 지난 대선의 의미를 되새긴다면 옛 동지들의 공격에 초조해 할 필요가 없다.

지금 위기인 것은 확실하다. 그 위기가 '총체적 위기'가 되지 않도록 대통령부터 마음을 다 잡아야 한다. 어렵다고 불평하지 말고 하소연도 하지 말아야 한다. 누가 억지로 시킨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맡은 자리가 아닌가. 뒤로 갈 수도, 옆으로 갈 수도, 도중하차할 수도 없는 자리다. 정도만이 내 편이라는 생각으로 앞으로 가야 한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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