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발원지란 오명을 쓴 중국 광둥(廣東)성. 그러나 이곳은 오래 전부터 외국인들에게는 개방의 첨병 역할을 한 지역으로,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장사 수완 뛰어난 사람들이 사는 지역으로 널리 알려졌다.광둥은 '문화 특구'로도 불린다. 외국 방송에 대해 제한이 많은 중국에서 유일하게 일반인들이 30개에 달하는 외국 위성방송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광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홍콩 드라마였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중국 본토의 드라마가 시청률 1위에 올라 세인의 관심을 모았다.
'와이라이시푸번띠랑(外來女息婦本地郞·외지 마누라와 토박이 남편)'이란 일일 시트콤이다. 아들 넷을 둔 집에서 첫째를 제외한 세 아들이 외지 출신 아내를 맞으면서 벌어지는 갖가지 에피소드를 다뤘다.
어찌 보면 매우 상투적이지만, 문화 교차 지대에서 수많은 외지인과 함께 사는 광둥인 자신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어필했다.
돈 될만한 일이 생기면 밥 먹다가도 뛰어나간다는 광둥인들에게는 꼬박꼬박 챙겨보지 않아도 되는 단막극 형식이란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이 드라마는 광둥 방송국에서 2000년 10월부터 지난해까지 400여회 방송(저녁 8시3분)됐고, 19일부터는 속편이 방영되고 있다. 내년 설 연휴를 겨냥해 영화로도 만들어진다.
반면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 3성에서는 동북부 농촌을 무대로 한 드라마 '류라오껀(劉老根)'이 패권을 장악했다.
걸쭉한 북방 사투리를 쓰는 주인공 류 아저씨는 사람 좋고 호탕한 '의리의 사나이'이며, 경제 마인드도 갖춰 마을 발전사업을 떠맡는다. 한마디로 현재 동북 지역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에 딱 좋은 캐릭터다. 리우 역을 맡은 배우는 삼척동자도 안다는 희극배우 출신의 자오번산. 끝도 없이 펼쳐진 흑토 평원, 대규모 삼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축들의 방목 광경 등 화면 속 배경들은 바로 동북방의 그것이다.
지난해 CCTV―1채널에서 황금시간대인 저녁 8시5분에 18회 방송된 이 드라마는 올해 초 속편 22회가 방영된 데 이어 현재 3편을 촬영하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를 타고 '류라오껀'이란 상표를 단 각종 상품이 쏟아져 나왔다. 쌀 밀 식용유 간장 등 식료품에서 고량주 연필, 심지어 '류라오껀 비료'까지 나와 있다.
그러나 이처럼 대단한 인기를 끈 '류라오껀'도 광둥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선양(瀋陽) 등에서는 평균 20%대였던 시청률이 광둥에서는 1.5% 안팎에 그쳤다.
한 시청자의 평가는 그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 "드라마 정서가 우리에게는 맞지 않아요. 주인공의 경제 마인드도 우리 쪽에서 흔히 보던 구닥다리죠. 그리고 무엇보다 동북 사투리를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중국인의 민족성은 어떤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이 두 편의 드라마로 그 설명을 시작할 수 있을 듯하다.
/이재민·중국 베이징대 박사과정(중국 매체 및 문화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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