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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회 31일 연례 학술대회/"인문학 연구업적 평가모델 제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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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회 31일 연례 학술대회/"인문학 연구업적 평가모델 제시를"

입력
2003.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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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연구 기반 조성을 위해 연 2,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집행하고 있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재단)의 일부 사업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서양 학술 명저 번역 지원 사업'의 심사단 구성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심사단 선정위원으로 참여한 한 교수의 입을 통해 최근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재단의 지원을 받은 대학 연구소가 6년 째 영수증 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이른바 '프로젝트'를 미완으로 남겨두었는데도 아무런 문제 제기가 없다는 지적도 있었다. 모두 올 들어 나온 얘기다.이번에는 대학 연구업적 평가의 결정적 기준인 재단의 학술지 평가가 도마에 올랐다. 기회 있을 때마다 거론됐던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런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비판 강도만 커지고 있다. 이번에는 국어국문학회가 '총대'를 멨다.

국어국문학회가 31일부터 6월1일까지 동국대에서 '국어국문학 연구 업적 평가의 제문제'를 주제로 연례 학술대회를 연다. 학회 대표이사로 이번 학술회의 대회장을 맡은 서대석 서울대 교수는 "인문학의 침체는 인문학의 학문 성과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데 원인이 있다"며 "질적 측면에서 학문 발전을 위해 현 시점에서 연구 업적 평가의 모델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어조는 점잖지만 주제 발표 내용은 한결같이 신랄하다. 총론인 '국어국문학 연구 업적 평가 총괄 검토'는 조동일 서울대 교수가 맡았다. 각론으로 국어학 고전문학 현대문학 분야 연구 업적 평가의 문제를 각각 홍윤표(연세대) 김흥규(고려대) 최원식(인하대) 교수가 발표한다.

대회를 앞두고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조동일 교수는 미국 과학정보기구(ISI)의 과학인용색인(SCI)을 원용한다는 재단의 학술지 등급 매기기 과정이 불투명할 뿐 아니라, 논문이 영어를 기본으로 하는 ISI에 발표될 때 최고 점수를 받는다는 점, 단행본 저서보다 논문을 으뜸으로 한다는 점 등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국어국문학이나 국사학 논문은 가장 낮은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말본'을 쓴 최현배, '조선고가연구'의 양주동, '신문학사조사'를 쓴 백철은 등급 높은 논문 편수 미달이라는 이유로 퇴출돼야 하는 식이다.

최원식 교수도 "자국의 학술지를 국제 수준으로 격상하려는 노력은 포기한 이공계 기원의 신판 사대주의가 한국의 인문계까지 석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개탄했다. 김흥규 교수는 이런 풍조 때문에 "한국 고전문학의 경우 문헌학적 연구와 판독 해석 주석 번역 및 이에 관련된 기초 역량 축적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홍윤표 교수는 재단의 학자 업적 계량화 이후 "학회지가 재단의 '등재지'(논문 게재시 업적을 높게 평가 받는 학술지)가 되기 위해 무리하게 간행 횟수를 늘리거나 전국으로 회원을 확장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며 "(전문성 있는 학문 연구의 토대가 되는) 연구회 수준의 작은 모임을 전국적 학회로 등록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라고 지적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 조동일 교수 발제문 요지

연구 업적 평가는 교수의 신규 채용, 승진, 재임용 등에 결정적으로 작용, 학문 발전을 좌우하는 영향력을 가진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이하 재단)이 하고 있는 학술지 등재를 척도로 삼게 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재단에서는 미국 회사인 과학정보기구(ISI)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 '과학인용색인(SCI)'을 본떠 등재 학술지를 두 등급으로 나누어 정한다. 미국에서 취급 잡지를 선정하는 기준은 인용 빈도수이다. 잡지별, 연구자별, 논문별 인용 빈도수에 관한 정보를 알려준다.

하지만 재단에서는 등재 잡지를 임의로 선정해 발표하고 아무런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국가 기관의 두 가지 특징, 권력을 부리는 것과 공익에 봉사하는 것 가운데 앞의 것만 하고 뒤의 것은 버려두고 있다.

학술지 등급을 정하는 이유가 학회 발전을 유도하는 데 있다고 하는데 결과는 그 반대이다. 잘못된 제도 때문에 본말전도의 기현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학회는 허장성세를 일삼고, 학문은 내실을 잃는다.

ISI는 미국 회사가 하는 영업이고, 미국 사람을 1차 고객으로 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단은 논문을 발표 지면에 따라 등급을 가려 ISI에서 취급하는 잡지에 발표한 논문은 1등급, 재단 등재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2등급, 등재후보학술지에 발표한 논문은 3등급이라 하고, 그 밖의 것은 등외로 친다.

논문을 국내 학술지에만 발표하는 분야는 등급이 가장 낮다고 한다. 그런 기준에서 보면 국어국문학이나 국사학은 등급이 가장 낮은 분야이다. 논문이어야 제대로 된 업적이라고 평가하기 때문에, 저서를 쓰는 데 힘쓰지 않고 자료작업을 돌보지 않는 폐단도 생기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전례를 참고해 새로운 제도를 제안한다. 박사학위 취득자를 대상으로 부교수 이상의 교수 자격 인증 제도를 실시하고, 심사 대상 업적이 연구편·자료편을 함께 갖추고 연구사에서 획기적 의의를 가진 전작 저서인 것을 바람직한 조건으로 한다. 사전, 자료조사, 번역과 주해 등의 자료작업을 정당하게 평가하고 연구비를 우선적으로 지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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