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보다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에게 대북 정책에 관한 속마음을 더 솔직하게 털어놓은 것 같다대북정책의 이견차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양국 입장의 공통분모만을 모호한 외교적 수사로 치장했던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과는 달리 부시 대통령과 고이즈미 총리는 보다 직접적이고 강력한 어조로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를 거론했다.
우선 북한이 핵 위기를 높일 경우 한미 정상이 합의한 '추가 조치'는 미일 정상간에는 '더 강경한 조치'로 그 농도가 짙어졌다.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의 대북 경제협력이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배치로 전용되고 있다는 미국 일각의 우려를 알고 있다"고 말한 데 대해 부시 대통령은 핵과 마약의 확산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향후 북한의 미사일 부품 밀수입 단속 및 마약 수출 저지 등을 위한 공동의 노력이 진행될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은 25일 "내달 9일 운항을 재개하는 북한의 만경봉호 선원들의 일본 상륙을 계속 금지하고 동시에 출입국의 관리 심사 하역물 검사, 선상 검사 등을 엄격히 실시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더 강경한 조치에 조총련계 주민들의 대북 송금 금지 등 제재조치가 포함돼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고이즈미 총리는 24일 이집트로 떠나면서 "일본은 북한의 불법 교역과 불법 수입, 마약 문제 등에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경제 제재와는 다르다"고 말해 대북 송금 제재 등에 다소 신중한 입장을 표명했다.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 미국 중국 3자 회담의 추가 회담에 일본과 한국의 참여를 적극 주장한 점도 눈에 띈다. 한국 일본의 참여 문제가 대화 분위기 유지에 장애가 된다면 굳이 고집하지 않겠다는 노 대통령 입장과 대조를 이룬다.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 없이는 북일 국교 정상화는 없다"는 점을 명백히 해 부시 대통령의 전면적인 지지를 끌어냄으로써 대북정책 추진을 위한 국내 정치적 기반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부시 대통령은 주한미군의 재배치를 북한 핵 위기 해결 때까지 보류해 달라는 노 대통령의 요청에 대해서는 "안보 상황을 봐가며"라는 단서를 달아 놓았다.
미일 정상회담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외교적 접근이 평화적 해결을 가져올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해 미국이 군사적 행동을 북한 핵 해법의 우선 순위에 올려놓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그는 "강한 태도로 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 국내의 온건파와 강경파의 목소리를 아우르는 태도를 보였다.
이와 관련 워싱턴 포스트 칼럼니스트 짐 호그랜드는 25일 "지금은 외교적 트랙과 근육질적 트랙 모두를 고양할 시기일지 모른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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