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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우주의 점

입력
2003.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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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너 레빈 지음·이경아 옮김 한승 발행·1만5,000원

아인슈타인은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만이 무한하다. 하나는 우주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하지만 전자(前者)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1980년대 이전의 공상과학소설이나 '은하철도 999' 등 우주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등장하는 지명은 안드로메다 은하였다.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200만년을 가야 도착할 수 있다는 이 은하가 당시에는 우주의 외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유명한 허블 망원경 등 관측장비가 발달해 안드로메다 너머의 우주는 계속 발견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확신할 수는 없지만 우주는 무한한 것일까?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응용 수학 및 이론 물리학과 고등 연구원으로 있는 재너 레빈은 '우주의 점'(How the Universe got its Spots·2002년 작)에서 과감히 우주는 유한하다고 주장한다.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주된 방법은 현대수학의 일종인 위상수학(topology)이다. 일반인은 '뫼비우스의 띠' 등의 예에서 위상수학의 단면을 살필 수 있다.

이쯤이면 굉장히 난해한 과학서적이 될 것 같지만 18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일반인이 다른 세상의 이야기처럼 생각하는 여러 과학자들의 난해한 현대과학과 우주론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어머니에게 쓴 편지로 시작해 나중에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쓴 에세이와 일기형식을 사용했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계속되는 이야기는 저자의 생활 속에서 겪는 문학, 음악, 영화, 철학 등에 과학 이야기가 곁들여진다. 우주 팽창론을 부정한 아인슈타인을 설명하면서 우디 앨런이 주인공을 맡은 영화에서 앨런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걸 핑계로 학교 숙제를 하지 않으려는 장면이 있다는 예를 들기도 한다.

우주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우리는 시궁창 속에 빠져있다. 하지만 우리들 중엔 별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도 있다"는 오스카 와일드의 발언이나 조지 오웰의 '1984년'에서 나오는 숫자에 관한 이야기에서 멋들어지게 과학 이야기로 전환하는 글솜씨를 보여주기도 한다.

영국의 사회철학자 토마스 홉스가 "무한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하학자나 논리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는 말처럼 '우주의 끝은 과연 존재할까'라는 물음은 우주론자나 천문학자의 전유물은 아닌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우주가 하나의 점에서 팽창한 둥근 점이라고 주장하는 저자의 이론은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그의 분야가 실험으로 증명된 것이 아닌 이론상의 가설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을 읽은 독자는 과학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밤 하늘을 좋아하는 철학자나 문학가다운 젊은 과학자가 보이지 않는 진실을 증명하고자 하는 열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학자는 과학적 사고로 훈련되었으면서도 끊임없이 음악가나 문학가 등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한 과학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교감을 추구한다. 여성 과학자의 섬세한 글을 부드럽게 경어체로 풀어낸 이경아의 번역도 책을 읽기 쉽게 만든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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