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李起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2000년 6월 당시 이근영(李瑾榮) 산업은행 총재에게 현대그룹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등 대출과정을 주도한 사실이 밝혀졌다.★관련기사 A4면
'청와대 대출 압력설'이 사실로 드러남에 따라 대북송금이 남북정상회담 대가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현대상선과 현대건설에 대한 5,500억원 불법대출 혐의(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업무상 배임)로 구속된 이 전 산은 총재는 구속영장이 발부되기 전인 23일 오전 서울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2000년 6월3일 이 수석이 이용근(李容根) 금감위원장과 나를 시내 모처로 불러 조찬 간담회를 갖고 '현대가 망하면 햇볕정책과 남북관계가 위태로워진다'며 현대건설에 대한 대출을 요청, 당시 영업1본부장이던 박상배(朴相培) 전 부총재에게 대출 검토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씨는 "이후 '현대상선은 현금대출이 가능하지만 현대건설은 회사채 매입형식의 지원만 가능하다'는 검토결과를 보고했으며 이 수석이 이를 수용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또 "조찬 간담회 직후 한광옥(韓光玉)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며 "대출압력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이 수석의 부탁을 받고 전화를 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씨는 "이 수석이 간담회에서 '국정원도 현대 유동성 위기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고 진술, 산은 대출이 국정원의 요청으로 이뤄졌을 가능성도 시사했다.
한편 서울지법 영장전담 최완주(崔完柱) 부장판사는 24일 새벽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이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에 앞서 특검팀은 이 전 총재와 박 전 부총재가 특검 조사를 앞두고 사전에 진술내용을 협의하는 등 사건 은폐를 시도한 사실을 보여주는 A4용지 16매짜리 대책문건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총재가 작성한 문건에는 한광옥 실장과의 통화 여부 이기호 수석의 요구 등 특검팀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이 정리돼 있다.
특검팀은 이날 임동원(林東源) 전 국정원장을 재소환, 청와대의 대북송금 개입 및 정상회담 대가성 여부를 집중 조사했다.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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