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3년 5월24일 극작가 겸 소설가 송영이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8년 몰(沒). 송영은 최근 '발로자를 위하여'라는 창작집을 낸 소설가 송영(宋榮)씨와 한글 이름이 같지만, 그의 본명은 무현(武鉉)이다. 성을 뺀 이름만 놓고 보면 대한민국의 현직 대통령과 한자로까지 동명인 셈이다.만년을 정신질환에 시달리다 쓸쓸하게 죽은 것으로 알려진 송영의 생애는 문학 연구자들에게도 그리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1946년 6월 월북한 뒤의 생애에 대해서는 조국전선 중앙위원과 소련·인도네시아·몽고 등과의 친선협회 위원 등 명목성이 짙은 직위를 맡았다는 것 정도가 알려져 있고, 주로 서울에 머물렀던 일제 시대의 삶도 동시대의 다른 좌파 작가들의 삶에 견주어 조명을 덜 받고 있는 것 같다. 송영은 염군사(焰群社)와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를 거치며 1920∼30년대 노동자계급 문예운동에 작지 않은 기여를 했고 옥살이를 하고 나온 뒤에도 전향과 친일의 행보가 대다수 동료들보다 느렸지만, 당대 문예 운동의 실권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송영은, 연극이라는 장르의 특수성도 작용했겠지만,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이 이론 속에 함몰돼 대중을 얻지 못하고 있던 시절에 풍자를 곁들인 노동극으로 폭 넓은 관객을 얻은 작가였다. 그는 또 정통적 극작술(드라마투르기)을 염두에 두고 본격 희곡을 쓴 첫 세대 작가이기도 했다. 아무리 잡아 가두어도 기가 꺾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투지 앞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낀 자본가 가족이 자구책으로 호신술을 배운다는 줄거리의 '호신술'(1931)은 송영의 전형적인 풍자노동극이다. 아쉽게도, 송영은 1941년 총독부가 서양 선교사를 비방하기 위해 플롯을 짜 건넨 '삼대'를 각색함으로써 사상범의 족쇄에서 풀려나 자유를 얻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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