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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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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참을 수 없는 몸의 무거움

입력
2003.05.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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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보르도 지음·박오복 옮김 또 하나의 문화 발행·2만원

원저가 나오고 꼭 10년 만에 번역된 이 책은 지금 우리에게 매우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한국 성인 10명 가운데 1명이 성형수술을 받았으며 심지어 어린이들도 쌍꺼풀 수술을 받는다'는 타임지 기사처럼 외국인의 눈에 한국은 '성형의 나라'이다. 서양은 말할 것 없고 아시아 어느 국가에도 한국만큼 짙은 화장이 일반화한 곳도 없다. 여성들의 다이어트 열풍은 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몸을 가꾸기 위한 여성들의 이런 치열한 노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자기 만족을 위한 행위로 존중해야 옳은가. 그렇다면 거식증, 폭식증, 성형수술 부작용 등 부정적 후유증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은 거식증, 살빼기, 성형수술 등 현대 여성이 한번쯤 고민해 봤을 문제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젖어 있는 어떤 문화적 이미지와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널리 퍼져 있으며, 또 역사적으로 얼마나 지속적인 힘을 발휘하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미국의 문화비평가이며 페미니즘 학자인 수전 보르도 켄터키대 영문학과 교수는 여성의 신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몸과 마음을 분리하는 서구 문화의 뿌리 깊은 이원론에서 비롯했다고 지적한다. 이원론에서 몸은 동물적인 것, 내가 아닌 것, 자아가 아닌 이질적인 것이다. 여기에 성별이 덧씌워져 남성은 정신, 여성은 육체로 연결된다.

저자는 몸은 거대한 사회질서에서 무기력한 개인인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분의 하나라며 자기 몸을 지배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여성은 성취와 통제의 느낌에 도취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때 여성은 몸과 마음을 구별 짓는 늪에 빠진 것이다.

예를 들어 거식증 환자가 극단적으로 식욕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 그는 육체를 전적으로 초월해서 순수한 남성적 의지가 되거나 아니면 저급한 여성의 몸과 혐오스러운 배고픔에 전적으로 굴복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느낀다. 다른 어떤 가능성도, 어떤 중간 지점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저자는 책에서 페미니즘의 주류 논리대로 살을 빼고 싶어하는 수많은 여성을 가부장제의 규범을 내면화하고 수동적으로 그것을 따르는 꼭두각시로는 보지 않는다. 그들도 능동적으로 행위하는 주체이며, 거식증을 포함해 히스테리와 광장 공포증 등 현대 여성의 이상 반응은 '불완전하고 무의식적이고 비생산적이지만' 분명히 하나의 저항으로 읽을 수 있다고 해석한다.

몸과 마음의 극단적 이원론을 '통상의 철학적 논의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사 전반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매우 실용적인 형이상학'이라고 규정하는 저자는 그 형이상학은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제도와 실천의 구체적인 변화를 통해서만 해체될 수 있다'고 본다.

학술서의 틀을 가지고 있어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는 않지만 몸과 관련해 현대 여성이 당면한 숙제를 깊숙이 들여다본 역저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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