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지음 열림원 발행·전2권·각권 8,500원
"나이 먹은 부부가 오랫동안 치성을 드린 끝에 옥동자를 낳았다. 아이가 어깻죽지에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나라에서는 비상한 징후를 지닌 아이들을 잡아 죽이곤 해, 부모는 근심하다가 아이를 죽이기로 했다. 그날 밤 꿈에서 신령이 나타나 바위에 아이를 묻으라고 일렀다. 신령의 말을 따랐는데 소문이 퍼졌다. 아이를 묻은 지 아흔 아홉째 날에 관가 군졸들이 아비를 앞세워 무덤에 갔다."
이청준(64)씨가 제주도에 전해지는 '아기 장수 설화'에서 찾아낸 것은 국가 이데올로기의 폭력이었다. 27년 전 장편 '당신들의 천국'에서 짚었던, 썩어가는 권력의 문제와 이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아기 장수의 설화로 소설의 문을 열고 닫은 신작 장편 '신화를 삼킨 섬'이 그렇다.
제주 4·3 사건을 큰 줄기로 삼은 이 작품은 섬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도 '당신들의 천국'을 떠올리게 한다. 선명한 역사의식이 드러나는 '신화를…'을 두고 이씨는 "이 땅에 삶을 점지받고 태어난 보통 사람들의 진정한 소망과 그를 지켜나가기 위한 끈질긴 지혜의 힘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육지부 사람인 유정남이 아들 요선과 딸 순임을 제주도로 데려왔다. 무당인 딸은 저승길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원귀들이 섬에 넘쳐난다는 소문을 듣고, 원귀들을 줄줄이 씻겨 보내기 위해 왔다. 그것은 참혹한 폭력을 휘두른 정권의 '역사 씻기기' 사업이기도 했다. 1940년대의 역사의 상처가 1980년대라는 시간대에서 조명된다. 섬 사람들과 외지인들의 갈등이 지난 뒤 위령굿판이 펼쳐진다. 굿판은 작가의 간절한 기원이기도 하다. 작가는 역사와 이념의 대립 속에서 무고하게 죽어간 민중의 한을 보았고, 원귀를 달래 망자와 생자의 평화를 이루려는 염원을 품었다. 이씨의 소설 쓰기는 그 자체로 민중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씻김굿이다.
요선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 아버지 유정남은 젊었을 때 '인민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꿈을 꾸었던 청년을 흠모했었다. 한센병 환자였던 청년은 소록도 갱생원에 들어가 무고하게 죽어갔다. 유정남의 아들 요선은 실은 이 청년의 자식이었다. 이상향을 꿈꾸다 좌절한 사람의 이야기는 소설을 맺는 아기 장수의 설화와 맞닿아 있다.
"바위가 닫혀 있어 무덤을 찾을 수 없었다. 무장이 다그치자 아비가 토로했다. 어디서 말울음 소리가 세 번 들리더니 바위의 문이 열렸습니다. 무장이 채찍으로 군마를 갈기자 말이 울고 바위가 두쪽으로 갈라졌다. 몸을 숨겼던 아이는 무장의 칼에 죽었다. 아이는 장수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지만, 세상에 나올 날을 하루 앞두고 죽어갔다. 희망을 잃었던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아기 장수가 다시 태어나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꿈이 없이는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청준씨의 글쓰기는 한의 역사 속에서 꿈을 찾는 것이며, 그것이 세상을 견디는 힘이 된다. 작가가 소설 속의 한 등장인물을 통해 매우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당신들의 문학이나 독자들이 이 현실을 견디며 싸워 이겨내게 하는 전략과 힘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지금 당신들의 지적 자존심과 문학의 존엄성은 어디 있는가."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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