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분야의 현안을 놓고 청와대 내부, 청와대와 내각, 그리고 각 부처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는 시스템의 부재가 국정혼란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내각을 직접 조정하는 청와대의 각 수석 및 비서관이 없어짐에 따라 청와대 비서진의 업무 분담이 불명확하고, 총리실의 조정기능 강화 역시 석달째 감감 무소식이다.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청와대부터 각 부처까지 '소관이 어디냐'부터 따지는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얘기다.화물대란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이것이 정무 소관인지 민정 소관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후 '노동 관련 사안은 민정수석실, 시민사회단체 관련 사안은 정무수석실'로 교통정리했지만, 최근 전교조 논란이 불거지자 또 다시 '시민사회비서관실이냐 민정수석실이냐'는 혼란이 빚어졌다. 정부 부처에서 "어디로 보고를 해야 하느냐"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국정원장의 대통령 직보가 없어진 후 청와대의 정보 시스템도 아직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화물연대 관련 보고를 5월 초에 처음 받았다고 하지만, 국정원은 국정상황실에 2월부터 여러 차례 보고를 했다. 국정원 관계자는 "국정상황실 한곳으로 정보가 모이는 데 정보 가공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부처간의 업무 조정 시스템도 삐걱거리기는 마찬가지. 실제로 화물대란 당시 행자부에 설치한 정부 종합상황실은 제 기능을 못했다. 대신 국무조정실 직원 3명이 동분서주했다. 관련 부처들이 "대책이나 진행상황이 외부로 알려지면 사태 해결이 어려워진다"며 제대로 보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20일 국무회의에서 행자부 등 8개 부처가 떠들석하게 보고한 위기대응 시스템 특별법의 제정 역시 책임지는 부처가 없다.
주요 현안에 대해 국무위원들이 서로 딴소리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강금실 법무장관은 대법원이 13일 한총련을 이적단체로 판결한 데 대해 "합법화 추진은 별개"라고 정부의 입장을 밝혔지만, 고건 총리는 22일 "대법원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고 정반대의 말을 했다. 김진표 경제부총리와 권기홍 노동장관은 기업연금 도입 취지에 대해 엇갈린 해석을 내놓았고,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공권력 투입 기준에 대해 정부 안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도 연출됐다. 더욱이 한명숙 환경, 허성관 해수부 장관은 새만금 사업 반대시위에 참석하기까지 했는데 김영진 농림부 장관은 새만금 사업의 추진 입장을 밝히는 등 내각에서의 '따로 국밥'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 與野도 부채질
노무현 정부의 출범 이후 석달간 국정을 챙기는 집권당은 없었다. 오직 신당 창당을 둘러싼 집안싸움에 혈안이 된 민주당만이 있었을 뿐이다. 정권을 정치적·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여당의 직무유기가 국정의 총체적 혼돈을 부채질하고 있다.
거대야당인 한나라당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정 난맥상을 손가락질만 할 뿐 책임 있는 리더십의 부재와 당권 싸움으로 원내 과반정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온 나라가 들썩거렸던 지난 주, 민주당은 마냥 태평했다. 대구 지하철사태나 북핵 위기가 고조됐을 때는 그 흔한 특위라도 구성했지만 이번에는 그것마저 없었다. 언급이 있었다면 "제도적 문제를 개선하고 사태해결까지 필요한 역할을 다하겠다"는 12일 고위당직자 회의의 '공자님 말씀'이 고작이었다. 대신 의원총회와 신·구주류 모임에서는 신당 헤게모니 쟁탈을 위한 뜨거운 입씨름이 계속됐다. 또 다른 현안인 교육행정정보화사업(NEIS) 논란에 대한 당 차원의 깊이 있는 논의와 대책발표, 당정협의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정책기능이 무너지다 보니 가끔씩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도 중구난방이다. 추경예산 편성문제를 놓고 정책위와 일부 경제통 의원이 다른 목소리를 내더니, 기업의 분식회계 사면 여부에 대해서는 아예 정책위의장과 정조위원장이 상반된 의견을 발표, 혼선을 가중시켰다.
중요 현안에 대한 당정협의의 명맥도 사실상 끊겼다. 민주당이 베이징 3자 회담에 한국이 배제되는 사실을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알게 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한나라당도 표류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여(對與) 강경만능 풍조가 판을 치고 있고,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는 인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리더십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한나라당은 지난달 말 노 대통령이 국회 정보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영구(高泳耉) 국정원장과 서동만(徐東晩) 기조실장 임명을 강행하자 의총을 소집, 고 원장에 대한 사퇴권고결의안 제출을 결정했다. 보수 강경파 의원의 기세가 워낙 드셌던 탓이다. 그러나 박희태(朴熺太) 대표는 13일 "그것은 당론이 아니다"고 말해 주위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19일 노 대통령을 느닷없이 선거법 위반혐의로 고발한 것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 이런 상황에서 정부·여당과의 합리적 정책협의가 가능할 리 없다.
/유성식기자 ssyoo@hk.co.kr
■ 청와대 인적 구성
노무현 대통령이 '위기감'을 거론할 정도로 취임 초부터 국정 혼란이 야기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대통령 참모들이 편향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노 대통령 측근과 386운동권 출신 위주로 짜여진 청와대 참모들, 노 대통령과의 '코드'만 강조된 각료 구성 등을 보면 국정혼란은 '예고된 실패'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고 야당과 일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인수위 시절 전문관료가 거의 배제된 청와대 비서진 구성에 대해 '아마추어 일색'이라는 비판이 나왔으나 청와대는 이를 무시한 채 노 대통령과의 '코드론'을 내세워 밀어붙였다. 청와대 수석·보좌관을 제외한 38명의 비서관중 전문관료 출신은 행자부 국장 출신인 권선택 인사비서관과 치안감출신인 허준영 치안비서관 2명에 불과하다. DJ정부에선 절반 이상이 정부 부처 출신으로 채워져 실무 능력에 대해선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았다.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대처 과정이나 대통령 방미기간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못한 사례야말로 청와대 비서실의 아마추어리즘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국정원 등이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경보음을 울리는 정보를 국정상황실에 전달했으나 국정상황실이 이를 놓쳐 물류대란을 막을 수 있는 대책을 실기했다"는 얘기도 흘러 나온다. 청와대 안에서조차 "모든 정보의 병목 역할을 하는 국정상황실을 전문가보다는 대통령 측근이 장악, 기능에 걸맞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청와대내 '이너 서클'도 문제로 꼽힌다. 문재인 민정수석, 이호철 민정1비서관, 최도술 총무비서관 등 노 대통령의 부산 인맥과 유인태 정무수석, 정찬용 인사보좌관, 이광재 국정상황실장 등은 측근 중 측근으로 꼽힌다. 정책 결정이나 국정 조정 등이 전문성이나 능력보다는 측근 등 특정 인맥 위주로 이뤄진데 반해 '외인부대'격인 국민참여수석이나 홍보수석 등은 겉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 참모나 각료들의 이념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도 많다. 노 대통령을 포함, 각료들의 친노조적 성향이 화물연대 파업이나 공무원 노조의 강경 행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진동 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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