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연장 32km.언뜻 들으면 마라톤 거리를 연상할 지 모르지만 내가 36년간 피운 담배 개피를 한 줄로 이어 놓았을 때의 길이다. 2년 여전 금연을 결심하면서 우연히 계산해 본 것인데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고교 졸업 때까지 담배를 피지 않던 내가 처음 담배를 핀 것은 1965년 대학진학에 실패해 재수를 하던 때였다. 나름대로 갈등이 많던 시절, 친구 집 방 한구석에서 생애 첫 담배 연기를 들이 마셨다. 순간 방이 빙빙 도는 것같이 정신이 아득해져 그만 이불 위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런 고역을 치르면서 왜 담배를 피는 지 모르겠다'고 투덜대던 나는 이듬해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흡연가 대열에 합류했다.
맛을 알기보다는 멋으로 시작했던 담배였다. 그러나 입사 이후 점차 일에 열중하면서 나는 '골초'로 변했다. 하루 1갑 반이던 흡연량은 2갑으로 늘었고, 밤 늦도록 업무가 지연되거나 고민에 쌓일 때는 하루 3갑을 넘기기 일쑤였다. 몸이 아플 때는 담배를 멀리하기 마련인데 나는 심한 감기 몸살 증상이 있어도 담배를 손에서 놓지 못할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담배를 핀 지 꼭 30년째가 되던 95년 한때 금연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당시 신세계 광주점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사업을 성공 시키겠다는 자기 다짐을 위해 담배를 끊었다. 하지만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과 향수를 이기지 못하고 채 1년도 안돼 다시 담배에 손을 댔다. 담배를 책상 머리에 놓고 '피울까, 아니다 참아야 한다'를 반복하며 일주일을 갈등 하다가 결국 결심을 꺾고 말았다. 이후 욕망을 이기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한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 36년을 끈질기게 따라 다니던 담배를 끊게 된 계기가 찾아왔다. 신세계는 백화점 부문과 할인점인 이마트 부문으로 나눠져 있다. 신세계는 2000년 실적이 좋은 이마트 부문 직원들에게 별도 성과급을 지급했는데, 내가 맡게 된 백화점 부문 직원은 이익 목표인 1,000억원에 미달돼 성과급을 적게 받았다. 백화점 부문의 수장으로서 큰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장 하기 힘든 금연을 사내에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내 스스로에게 '담배를 끊는 것과 같은 결연한 마음으로 이익 목표를 달성하겠다'고 다짐하기 위해서였다.
금연은 본질적으로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이다. 그러나 금연 사실이 공개되면서 휘하 임원들도 하나 둘씩 금연을 선언하기 시작했다. 금연 열기는 전 회사로 확산됐고, 결국 회사 차원의 금연 캠페인으로 자리잡게 됐다. 이 캠페인 덕택에 신세계 백화점 부문은 17명의 임원 중 단 두 명만 담배를 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의 결단이 너무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이 글을 읽는 애연가들에게 말하고 싶다. "하루라도 빨리 담배를 끊으십시오. 담배는 당신의 몸과 정신을 서서히 갉아먹는 죽음의 사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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