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올해의 작가'로 선정한 재일 한국인 2세 곽덕준(郭德俊·66)씨의 40여 년 작품세계 전반을 보여주는 전시회가 21일 개막, 8월 3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제1전시실에서 열린다.일본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으로 자란 곽씨는 두 사회에서 모두 타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스스로의 정체성 문제를 작품으로 풀어내는 작가다. 나아가 세계 속에서 '사회와 개인의 관계' '정보와 인식 사이의 차이' 등의 문제를 회화, 사진, 오브제, 퍼포먼스등 다양한 매체로 표현한다. 실존적이고 어려운 주제이지만, 관람자들이 친근하게 작품에 다가오게 하는 해학적이고 역설적인 작업으로 그는 국제 미술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실측 가능한 존재와 행위'라는 개념의 허구성과 무의미함을 표현한 '계량기' 시리즈는 1970년대의 대표적 작업이다. 계량기에 큰 바위를 올려놓고 저울 눈금은 0으로 표시해놓았다. 0은 0이기도 하고 100이기도 하다. 80년대 이후에는 정치와 역사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일상적인 거짓'을 풍자하는 작업이 주를 이뤘다.
미국 대통령 선거 때마다 '타임' 지의 표지를 장식하는 초상화를 이용한 '대통령과 곽' 시리즈는 유머러스하다. 작품 '클린턴과 곽'의 경우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얼굴의 반을 거울로 가리고 아래 부분은 자신의 얼굴을 비쳐 촬영했다. 세계와 나의 관계는 환상이며, 폼 잡고 대통령 선거나 국제정치를 논하는 우리의 일상은 허구라는 것이다. 최근작 '풍화' 시리즈에서는 월남전, 9·11테러 등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이번 전시에는 모두 90여 점의 작품이 나온다.
일본에서 아시아 미술 기행을 위해 기획한 '한국 미술과 몽골 여름의 제전'이라는 관광 프로그램의 하나로 이번 전시 관람이 선정될 정도로 일본 내 곽씨의 명성도 대단하다. 현대 미술의 흐름과 전망을 살펴보는 것은 물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해외동포 작가들의 성과를 파악해볼 수 있는 기회다. 31일 오후2시 '작가와의 대화'가 마련되고, 매주 토·일요일 오후 2시에는 전시 설명회가 열린다. (02)2188―6033
/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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