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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부동산 別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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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부동산 別曲

입력
2003.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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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江湖)에 병이 깊어 죽림(竹林)에 누웠더니…> 로 시작되는 조선시대 가인(歌人)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관동별곡(關東別曲)은 우리나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절창(絶唱)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지나쳐 불치의 병에 걸린 것 같다는 '천석고황(泉石膏?)'의 경지를 표현한 가사다. 관동별곡에는 산수를 음미하고 산사와 계곡을 찾아 음풍농월하던 옛 선비의 한가로움과 자연 사랑이 곳곳에 배어 있다.송강의 '국토 사랑' 전통을 이어 받기라도 한 걸까. 요즈음 이 나라 사람들의 땅에 대한 애착은 고황의 차원을 넘어 고질(痼疾)이 됐다. 마치 <부동산에 병이 깊어 재개발 아파트로 돈이 몰리는> 형국이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불패신화'는 이제 어엿한 법칙으로 자리 잡았다.

재정경제부는 21일 부동산 부자들의 보유세 인상을 골자로 한 부동산 시장 안정대책을 내놓았다. 2월부터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대책만 11건. 한 달에 3건 꼴이다. 정부가 '강도 높은' 주택 안정 대책을 내놓은 게 불과 2주 전이다. 그런데도 아파트 값 상승세는 멈추지 않는다. 강남권 재건축 조합원 분양권은 여전히 전매금지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반사이익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몰려 값은 오히려 초강세다. 13평짜리 아파트가 4억원을 웃돌고 5·8대책 이후 2,000만∼3,000만원 올랐다. 이쯤 되면 부동산 대책이란 말이 무색해진다. 투기 억제 대책이 오히려 투기를 부추기는 현상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으니 새삼스레 놀랄 일도 아니다. 엊그제 한 부동산 컨설팅 회사의 설문조사에서도 '정부 조치로 투기세력이 줄어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응답자 3,392명 중 18%에 불과했다. 실수요자들일수록 정부의 대책에 더 냉소적이다.

최근 부동산 가격 파동은 정부의 거시 경제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2000년 말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지자 정부는 경기를 살린다는 명목으로 2001년에만 4차례나 금리를 인하했다. 본격적인 저금리 시대에 진입하면서 은행권을 빠져 나온 부동자금은 대거 부동산으로 이동했다. 시중에 무려 380조원의 자금이 흘러 넘치고 있다니, 투기가 없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거액이 1주일 사이 강남의 아파트에 프리미엄으로 얹혀 돌아다니는 것이 현실인데,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 들어가 돈 되는 매물을 찾느라 밤을 지새는 직장인들을 무턱대고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부동산의 '맛'을 본 투기성 자금은 정부의 뒷북 대책에 내성이 생겨 분양권 전매 제한이 없는 주상복합으로까지 진출하고 있다. 망국적 부동산 투기 붐은 전국민을 투기세력으로 내몰고 부동산 가격 거품을 심화시킨다. 카드 빚에 몰린 신용불량자가 300만 명을 넘었는데, 한 쪽에서는 재건축 아파트 평당 가격이 3,000만원을 넘나드는 사회는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다.

부동산 정책은 투기세력과의 심리게임 성격이 강하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믿음을 주지 않는 한 투기 광풍은 잠시 수그러 들었다가도 망령처럼 다시 나타날 소지가 크다.

실수요자 중심의 청약을 유도하고 부동자금이 만드는 거품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부가 모든 지역의 분양권 전매를 전면 금지하는 신 '부동산 별곡(別曲)'이라도 불러야 할 판이다.

이 창 민 경제부 부장대우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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