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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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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사람

입력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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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어트 바우만 글·스타시스 에이드리게위치우스 그림·이용옥 옮김 마루벌 발행·8,800원

그림 동화 '아무리 먹어도 배고픈 사람'은 세상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사람에 대한 괴상한 이야기다. 마치 설화 한 편을 각색한 듯한 이 이야기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사람이 있었어'로 시작한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차지 않아 늘 온 몸에 기운 하나 없는 사람이 있었다. 밭에 있는 농작물을 모두 먹어치우고, 사과를 다 따 먹어도 그는 배가 차지 않았다. 마을의 숲을 통째로 먹어치우기까지 했지만 그래도 그는 배가 고픈 기괴한 인물이었다.

왜 그럴까. "오랫동안 난 혼자서 살았어요. 어머니의 다정한 손길과 사랑을 조금도 받지 못했어요. 아내라면 그걸 베풀 수 있겠죠. 허전해서 자꾸 먹어대는 겁니다. 세상 여기 저기 널린 것을 다 내 뱃속에 넣는 거예요." 그는 사랑과 보살핌에 굶주렸던 것이다.

배고픈 사람이 사랑한 사람은 방앗간 집 딸 마리이다. 하지만 마리의 아버지는 딸에게 "어떻게 괴물 마누라가 되어서 살겠냐"며, 배고픈 사람의 청혼을 거절하고 그를 문 밖으로 내던져 버린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사랑을 구해 배보다 더 허기진 마음을 채우려던 그의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7년 후 복수가 시작된다. 배고픈 사람은 방앗간 주인을 잡아 먹고, 마리도 먹고, 방앗간까지 삼킨다. 사람들이 감옥에 가두자 쇠창살을 먹어버리고 간수를 잡아 먹는다. 그리고 사라져 버린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는 줄거리는 지난해와 올해 4, 5월 공연해 큰 인기를 모았던 국내 창작 연극 '하륵이야기'를 닮았다. 하지만 하륵이야기가 '세상 밖의 세상, 세상 안의 세상'이라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다루었다면, 이 동화는 채워지지 않는 사랑의 파멸이라고나 할 비극 소설의 분위기를 진하게 내고 있다. 이유야 어쨌든 사랑 받지 못하는 사람의 저주가 동화에 어둡게 깔려 있다. '0세에서 100세까지 즐기는 그림책'이라는 출판사의 기획 취지답게 어른이 보기에도 모자람이 없다.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동화를 더 신비롭게 만드는 것은 리투아니아 출신 미술가 스타시스 에이드리게위치우스(54)의 그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이라기보다 한 사람이 탈처럼 배고픈 사람, 방앗간 주인, 방앗간 집 딸의 얼굴을 바꿔 가며 얼굴 앞에 대고 찍은 작품 사진이다. 넓은 미간에 큰 코, 그리고 무엇이든 씹을 수 있을 것 같은 단단한 이에 죽은 사람 같이 검푸른 얼굴 빛을 한 배고픈 사람이 나무, 쇠창살, 마침내 사람까지 먹어 버리는 모습이 환상적인 분위기로 연출된다. 31세에 폴란드로 옮겨 회화와 포스터 조각 가면 작업을 하는 에이드리게위치우스는 폴란드 국내는 물론 미국 일본 이탈리아 벨기에 스위스 등 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가이다. 그의 그림을 통해 폴란드를 비롯한 동유럽 일러스트레이션의 높은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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