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엔 퍽 다양한 장르와 개성의 작품이 여럿 개봉된다. 단연 눈길을 끄는 화제작은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2003년의 기대작 '매트릭스2―리로디드'.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사상 가장 혁신적 작품 중 하나로 간주되는 전작 '매트릭스'에 깊은 감명을 받은 팬들이라면 다소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액션이 업그레이드 되고 멜로 코드 등이 강화되는 등 대중적 재미가 한층 늘었으나 그 기념비적 혁신성 등을 더 이상 만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타워즈 에피소드 1, 2'를 비롯해, '반지의 제왕' '스콜피온 킹' 등 여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떠오르고 그 때문에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었던 건 그래서일 것이다. 물론 이런 부정적 평가와 상관없이 적잖은 팬들을 사로잡긴 하겠지만.한편 올 전주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이미 소개된 '파 프롬 헤븐(사진)'은 '여성 영화'의 거장, 더글러스 서크의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1955)을 재해석한, 주목할 만한 가족 멜로물이다. 미 영화계의 대표적 인디 감독 토드 헤인즈('벨벳 골드마인')와 세계적 인디 제작자 크리스틴 바숑, 주류와 비주류를 오가며 맹활약 중인 명 여우 줄리앤 무어 등이 손잡고 만든 지독한 독립 영화다. 그런데도 그 어느 화려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못지않은 탁월한 완성도를 자랑한다. 서구의 숱한 평자들로 하여금 '2002년 최고작'으로 선정하게 만들 만큼의 경이적 완성도를. 테크니컬러로 구현한 색채감을 포함한 미장센에서부터 카메라 및 연기 스타일, 음악 효과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서크의 걸작을 벤치마킹한 영화는 성격화 및 동성애 등의 문제의식에서는 그 걸작의 야심과 수준을 능가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특히 당시로선 전위적·파격적이었을 오리지널의 해피 엔딩을 보란 듯 거부함으로써 '하늘과는 거리가 먼' 현대 (미국) 사회의 진면모를 통렬하게 드러낸다.
극히 적나라하고 발칙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에 진한 감동을 자아내는 '튀는' 로맨틱(섹시) 코미디를 한편 보는 재미는 어떨까? 다분히 선정적이긴 하나 제목에서 이미 주제를 효과적으로 지시하는 '베터 댄 섹스'. 원 나잇 스탠드에서 출발해 3박4일 간의 사랑, 더 나아가 평생 갈 진정한 관계로까지 발전하는 영화를 지켜보노라면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듯하다. 내친 김에 좀처럼 접하기 힘든 뜻 깊은 우리 영화 한편 보는 건 어떨지. 나운규 탄생 100주년을 맞아 한국 영화사의 최대 유산 중 하나인 '아리랑'(1926)을 리메이크한 이두용 감독의 '아리랑'. 단언컨대 변사 최주봉의 도움을 받아 1초에 24프레임이 아닌 18프레임을 사용한 이 흑백 무성 영화를 타고, 한 맺힌 우리 네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맛이 여간 짠하질 않다.
/전찬일·영화 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