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그린벨트 지역인데 어떻게 가방끈 공장이 들어와 있습니까?" "요즘 다 이렇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20일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농지였던 땅에 들어선 100평 남짓한 규모의 창고 3동 중 한 곳에서 인부 3∼4명이 가방끈 제조에 여념이 없었다. 공장장은 "불법인 줄은 알지만 주민들이야 창고 지어 월 150만원 정도 임대료 챙기고, 우리는 임대비가 다른 데보다 훨씬 싸니까 서로 좋은 거 아니냐"고 반문했다. 관청에서 단속은 안하냐고 묻자 공장장은 "처음 걸리면 400만원 정도 벌금이 나오는데, 창고 주인하고 제조업체하고 반반씩 물고 나면 그걸로 끝"이라며 당당한 표정이다.
그린벨트에 가득찬 창고
최근 1∼2년 사이 경기 하남시를 중심으로 그린벨트 지역을 강타하고 있는 '불법 창고 바람'이 남양주시, 구리시 등 수도권 지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축사 등 농가시설로 지어 불법적으로 창고로 전용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아예 공장으로 만드는 바람에 그린벨트는 완전붕괴 상태다.
불법 창고의 진앙은 하남시.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 바로 옆인 하남시 천현동은 아예 대단위 물류창고 단지가 조성돼 있었다. 그린벨트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100여평 규모의 창고가 100여개 이상 일사분란하게 서있다. 한 창고 주인은 "의류 등 각종 물류창고가 가장 많고 플라스틱 공장 등 제조업체들도 종류별로 다 들어와 있다"며 "고속도로 옆이다 보니 입지도 좋고, 그린벨트니까 임대료도 저렴하다"고 대답했다.
불법 창고와 공장은 하남시에서만 1,000동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환경부의 한 관계자는 "하남시 그린벨트 지역내에 창고가 들어설만한 곳은 이제 다 차있어 현재는 구리 남양주 등으로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린벨트를 이젠 창고벨트라고 불러야 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남양주시로 접어들자 도로변 농지에 어김없이 창고들의 행렬이 계속됐고, 군데군데 터를 닦고 창고 골조를 세우는 신축 작업도 한창이었다. 창고 열풍이 하남시를 중심으로 해서 인근 지역으로 확산되는 추세가 한 눈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난개발로 그린벨트 경관은 완전 엉망이 됐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오폐수 처리 문제. 창고들은 하수처리구역 밖에 지어져 오폐수가 처리장을 거치지 않은 채 무방비 상태로 하천으로 흘러들어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하남시 천현동의 창고단지 옆 도랑은 말 그대로 구정물이었다. 이 물들이 거품을 잔뜩 머금은 채 한강 지류인 덕풍천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지자체 대응 미흡
당초 창고는 그린벨트 지역내 농민들의 소득보전을 위해 축사 등 농업용 시설로 가구당 3∼4동을 지을 수 있도록 허용됐던 것. 하지만 1999년 그린벨트 해제 방침 발표 이후 어수선한 틈을 타 최근 1∼2년 사이 물류 창고나 공장으로 둔갑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100여평 규모의 창고 1동당 임대료로 연간 1,500여만원의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돼 공장업체들과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고, 이 과정에서 단속 책임이 있는 지자체는 팔짱만 끼고 있는 상태.
갑작스런 불법 창고 열풍에 건설교통부도 당황해 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그린벨트를 재정비해야 하는데, 계획 수립 전에 불법 창고들로 지역 전체가 뒤죽박죽 됐다"며 "지자체가 적극 나서 단속해야 하는데 주민들의 눈치를 보느라 수수방관하고 있어 우리도 속을 끓고 있다"고 말했다.
건교부는 불법창고를 억제하기 위해 벌금을 현행 300만∼400만원에서 1,000만원대까지 올리고 불법창고에 단전 단수 조치를 취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지자체가 계속 방관할 경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30년간 보존해온 그린벨트가 어처구니 없게도 창고 단지가 됐냐"는 허탈한 목소리가 지금 그린벨트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하남·남양주=글·사진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남양주 와부읍 도곡3리 어룡마을 "우린 창고가 싫다"
"아름다운 우리마을, 창고가 싫습니다."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3리 어룡마을. 마을 곳곳에는 '창고가 싫다'는, 예사롭지 않은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예봉산을 배경으로 80여호가 모여 사는 단초로운 이 그린벨트 마을에도 지난해말부터 어김없이 불법 창고 바람이 불어 닥쳤다. 외지인이 마을 주민의 땅을 산 뒤 올해초 마을 뒷편 농지에 건물 8동을 세운 것.
하지만 이 마을은 달랐다. 마을 주민들은 넙죽 '창고 유혹'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을 뒷편에 건물이 들어서자 대책위원회가 꾸려져 마을 주민들간에 논의가 이뤄졌다. 결론은 "창고가 결국 마을을 모두 망친다"는 것이었다. 주민 김제경(56)씨는 "주민들이 처음에는 갈팡질팡했지만 당장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 아름다운 고향 전체를 잃을 수 있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40여년째 이 마을에서 살아온 주민 이성숙(57)씨는 "그린벨트로 30년동안 묶여오면서 답답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때묻지 않게 지켜온 고장인데, 한 순간에 창고마을로 끝낼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주민들이 이 같은 결의를 이룬 데는 '덤프트럭 노이로제'도 한몫을 했다. 지난해말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 덤프 트럭이 굉음을 내면서 마을 앞 길을 지나다녀 마을 곳곳에 금이 가고 일부 집은 아예 담까지 무너졌다. 한 주민은 "창고가 문을 열면 더 많은 트럭에 시달릴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니 아찔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현재 세워져 있는 건물 8동이 불법 전용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자세다. 마을 부녀회장인 표춘화(43)씨는 "이 건물이 꿩 사육장이라는 소리를 하지만, 결국 공장이나 물류창고로 사용할 게 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을 주민들은 최근 건물 입구에 경고장을 붙여 놓았다. '이 건물이 불법 전용되면 즉각 고발 조치하겠다'는 것. 이 같은 주민들의 반발 움직임으로 건물은 현재 텅 빈 상태였다. 주민 이성숙(56)씨는 "관청에서 철저하게 관리한다면 우리가 이런 경고장까지 붙였겠냐"며 "관에서 안하면 우리라도 끝까지 지켜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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