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 되면 미제 물건 장수에 변두리 술집 주인으로 변신하는 이효춘씨가 1978년 안방극장을 달구었던 '청춘의 덫'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심은하보다 먼저 남자의 배신과 여자의 복수를 냉정하면서도 독하게 그렸던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이젠 가발 모델로 유명해진 이덕화씨도 87년 '사랑과 야망'에서 제임스 딘 못지않은 젊은 반항아의 모습으로 안방극장을 휘어잡은 청춘 스타였다.
세월 따라 변해가는 스타의 모습은 시청자들에겐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추억하게 하는 하나의 코드이기도 하다. 때문에 100여 개의 전문채널이 활성화한 오늘날, 드라마 전문채널을 통해 시청할 수 있는 세월 속 히트 드라마는 텔레비전을 오래 사랑해온 시청자들의 삶의 동반자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TV의 가치를 폄하하더라도 TV의 가치는 빛날 수 있는 것이다.
채시라와 최재성의 철조망을 사이에 둔 키스 신으로 오래 기억된 91년의 '여명의 눈동자' (MBC 드라마넷 월∼금 오전5시). 일제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며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간 세 남녀의 삶을 그린 이 드라마는 이데올로기를 초월한 인간 본질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고, 시청률 70%를 상회하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당시에는 주말 재방송 이외에는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열혈 팬들이 드라마를 녹화해 서로 돌려보며 드라마의 감동을 오래도록 간직하기도 했다. 이젠 텔레비전에서 사라진 고현정의 당당한 신인시절 모습도 볼 수 있다.
미국 로케이션을 통해 만들어진 화려하고 다이나믹한 화면과 함께 이덕화 황신혜 박상원 이응경 신애라 등 당대 스타들이 총출동했던 92년 '모래 위의 욕망' (SBS드라마넷 월∼금 오전5시, 오후7시40분). 성공을 꿈꾸는 한 인간의 야망과 몰락을 그린 이 드라마는 밑바닥 인생에서 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주인공의 인생역전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했다. 가수 이은미의 '기억 속으로'란 노래도 이 드라마의 삽입곡이었다.
한국판 '야망의 계절'(70년대 말 어윈 쇼의 베스트셀러를 드라마화해 큰 감동을 불러 일으켰던 닉 놀테, 피터 스트라우트 주연의 미국 드라마. 원제 Rich Man, Poor Man)이라 불리우기도 했던 87년 '사랑과 야망' (OSB드라마 월∼금 오후1시25분, 오후7시40분·사진). 야망을 쫓는 기회주의자 남성훈과 의리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는 멋진 건달 이덕화 형제의 삶을 통해 인간 내면에 자리한 사랑과 욕망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화려한 욕망의 화신 차화연과 순수한 사랑의 표상 김청의 연기도 돋보였다.
30·40대 이상의 사람들에게 TV는 새로운 세상을 보는 창이었고, 성장을 함께 한 문화의 도구였다. 방송 시간을 기다려 텔레비전앞에 모이고, 가족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던 맛, 그건 혼자 만의 방에서 텔레비전 또는 인터넷을 통해 나홀로 보는 드라마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맛을 갖고 있다. 드라마를 추억한다는 것, 그것은 인생을 추억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공희정 스카이라이프 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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