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60>소설가 한승원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60>소설가 한승원

입력
2003.05.22 00:00
0 0

서재에 출몰하는 지네를 잡아먹어 달라고 닭 다섯 마리를 사다가 정원 잔디밭에 놓아 먹인 적이 있다. 지네의 발원지는 정원의 잔디밭이므로. 암탉 네 마리를 거느린 수탉은 틈만 나면 울었다. 아니 간헐적으로 노래부른다고 말해야 한다. 노래하되 매우 힘들게 했다. 그놈의 노래하는 것을 보면 그 노래하는 행위가 장난삼아 하는 것이 아니다. 한 번 한 번의 노래가 아주 근엄하게 치르는 하나의 행사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렇다. 먼저 두 다리를 보통때보다 약간 더 넓게 벌리고, 엉덩이를 약간 낮추고 몸을 앙바틈하게 만든다. 마음 놓고 한 곡조를 멋지게 뽑을 수 있는 안정적인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다음은 하늘을 향해 가슴을 넓게 펴고는 두 날개를 활짝 펴서 머리와 등 위쪽으로 높이 올라가도록 저어 바람을 일으키고 엉덩이 부분을 툭툭 치고 나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길게 빼 늘여 살짝 젖히고 목청껏 노래한다. 가능하면 가느다랗고 긴 고음을 아름답고 곱게 뽑으려 한다. 그러할 뿐만 아니라 소리의 강약을 조절하고 여운이 오래 남게 하려고 동원할 수 있는 데까지 기량을 모두 동원한다.어떤 때는 한번 울고 나서 다시 거듭 두 차례 세 차례나 노래하기도 하는데 그것은 좀전에 부른 노래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까닭이다. 처음, 그놈의 노래에 대하여 잘 몰랐을 때, 그놈의 삶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을 때,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는 그놈의 노래 소리에 진저리가 났다. 그놈은 내 서재 창문 앞에 와서 자기 목청껏 울어대곤 했다. 나는 작업을 중단하고 창문 앞으로 가서 그놈을 향해 '시끄러!'하고 소리쳤다. 그놈은 자기에게 화를 내고 소리쳐 말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나에게 들으라는 듯 다시 고운 목청으로 한 곡조를 뽑고 나서 으스대며 자기 암탉들에게로 갔다.

나는 오래지 않아 그놈의 심사와 성정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자기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자 암탉을 지키고 영역을 선포하는 일이다. 그놈은 살아 있는 한 노래 부르고, 노래 부르는 한 살아 있는 놈이다. 노래 부르는 일이 그놈을 신명나게 하는 것이다. 신명이 그 삶을 살맛 나게 하는 것 아닌가.

수탉에게 있어서 사는 재미는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암탉과 시도 때도 없이 장소를 상관하지 않고 교미를 하는 재미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향해 한껏 고운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이다. 만일 그놈이 암탉과 교미하려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지 않으면 그놈의 건강에 이상이 있다고 짐작해도 된다. 수탉을 키우는 한 그놈의 교미 광경을 보아야 하고 노래 소리를 들어야 된다.

이 세상 어느 누구인들 수탉하고 똑같지 않으랴. 내게는 수레바퀴같은 두 목숨이 있다. 하나는 생물학적 목숨이고 다른 하나는 작가적 목숨이다. 그 둘 가운데 하나가 부서지면 내 수레는 존재의미를 잃게 된다.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이 사람아, 지금까지 쓸 만큼 썼지 않은가? 이제는 제발 소설 좀 그만 써라'고 나에게 말한다면, 내가 수탉에게 '시끄러!'하고 말했을 때 수탉이 그랬던 것처럼 그를 멀뚱하게 바라보기만 할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주위 사람들은 내가 소설을 거듭 써내는 것을 보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유학(儒學)은 사업을 통해 정심에 이르고 정심(正心)에 이르려고 사업(事業)을 하는 것이라고 다산 정약용은 말했다.

사업이란 무엇인가. 주역의 계사상전에 이렇게 쓰여 있다.

"형이상의 것을 도(道)라 하고 형이하의 것을 기(器·실천)라 하고 음양이 서로 작용 변화하고 서로 견제하는 것을 변(變)이라 하고, 음양의 법칙에 따라 진행하는 것을 통(通)이라 하는데, 그 이치를 들어 천하 인민에게 실행하는 것을 사업(事業)이라 한다. 상(象·우주의 참모습 혹은 진리)은 성인이 천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심오한 법칙을 보고 그 형용을 모방하여 물건에 적의하게 형상화한 것이다."

우주의 이치를 들어 천하 인민에게 실행해 보이는 사업은 공자가 말한 어짐(仁)일 터이고, 어짐은 정다산 같은 실학자가 말한 '효도(孝)하기, 아래사람 사랑하기(弟), 가엾은 사람 구제하기(慈)'일 터이다.

사업 혹은 어짐은 플라톤의 이데아일 터이다. 다산 정약용은 강진에서 유배살이를 하는 동안 끊임없이 저술을 했다. 정적들이 그를 없애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음을 알고 있는 그는 삶이 얼마나 불안하고 외롭고 슬펐을 것인가. 그러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는 일(사업)을 했고, 그로 말미암아 어지러운 마음을 평정(정심)하였던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 갇혀 살지 않았다면 그 많은 저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오늘의 정다산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갇혀서 한 사업이 그를 만든 것이다.

사람은 가두어 놓고 살기를 좋아하는 영리한 동물이다. 들과 산에 사는 동물들을 끌어다가 울타리를 치고 가두어 길러 필요한 때에 잡아먹고, 집을 짓고 담을 쌓고 아내나 남편이나 아이들을 그 안에 가두어 놓고 기르지 않으면 불안해 한다. 나라와 고을과 마을을 만들고 성을 쌓고 그 안에 사람들을 가두고 다스린다. 그리고 스스로도 그 속에 갇혀야만 편안해진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마저도 가둔다. 혼자 살기 두려우므로 무리를 지어 그 속에 자기를 가둔다. 무리는 이념을 가지게 되고, 모든 개인은 그 이념 속에 갇히게 된다. 자의반 타의반에 갇혀 산다. 모든 사상, 모든 주의 주장, 심지어 종교까지도 하나의 이념일 수 있다.

자기 가두어 놓고 살기에 염증이 나면 자기를 풀어 놓으려 한다. 그렇지만 오랜 동안 자기를 풀어 놓지 못하고 곧 다시 가두어 놓는다. 자기 가두어 두기와 자기 풀어 놓고 살기가 모순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극복하지 못한다. 그것은 한없이 거듭된다. 따지고 보면 자기를 풀어 놓는다는 것이 사실은 더 확실하게 자기를 자기 이념과 사상 속에 가두는 것이다.

수탉은 자기가 늘 노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이념과 사상의 강박 속에 갇혀 산다. 목청껏 노래하지 않으면 수탉일 수 없다는 의식이 속에 깊이 숨어 있다. 그것이 사업이다. 사업을 하지 않으면 신명이 나지 않고 신명 나지 않는 삶은 죽음 한 가지이다. 사람은 신명(사업)을 위해 살아 있어야 한다. 신명 속에 갇혀 사는 신명의 노예이다.

그 사업은 무엇인데 어디에서 왔는가. 그것은 꽃이 왜 피는데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 나는 왜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질문하고 같을 터이다.

나의 삶은 나의 본래 모습(원형)으로 회귀하려 한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왔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그들의 어머니 아버지에게서 왔다. 그 뿌리는 우주 생성의 첫 순간으로 뻗어 있다. 애초에 불과 물만 있었고, 그것이 땅을 만들고 땅이 푸나무와 짐승을 만들었다. 푸나무를 짐승이 먹고, 사람이 푸나무와 짐승을 먹고 살아간다. 먹이사슬의 꼭지점에 서 있는 사람은 텅빈 하늘로 날아갈 꿈을 꾸고 산다. 하늘은 신의 또 다른 이름이다. 신은 완성된 존재이다. 그것은 우주를 만든 불과 물의 영혼일 터이다. 우주의 원형이 그것이다. 소라고동의 나선처럼 한사코 오른쪽으로 돌려고 하는 무늬가 내 속에 있다.

소설을 쓰는 것은 독자에게 우리 삶의 진실에 대하여 질문하기에 다름 아니다. 소설가는 살아 있는 한 끝없는 우주의 율동에 대한 의문 속에 잠겨 있고, 그는 늘 그 의문을 수탉처럼 스스로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질문한다. 자기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독자로부터 증명받기이다.

정다산은 강진에서 책 한 권을 저술할 때마다 그것을 하필 고해절도인 흑산도에서 유배살이 하고 있는 형 약전에게 보내어 증명 받으려고 했다. 약전 또한 자기 저술을 동생 약용에게 보내 증명 받으려고 했다.

수탉과 꽃은 자기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소리쳐 노래하고 울긋불긋한 색깔로 자기 몸을 치장하고, 또한 귀 가진 모든 것들로부터 자기 노래의 아름답고 고귀함을 증명 받고 싶어 하고 눈 가지고 코 가진 것들로부터 고혹적인 교태와 향기를 증명 받고 싶어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와 로맹 가리가 왜 자살을 했는가를 잘 알고 있다. 나는 살아 있는 한 소설을 쓸 것이고 소설을 쓰는 한 살아 있을 것이다.

● 연보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1963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목선' 당선 등단 소설집 '앞산도 첩첩하고' '안개바다' '폐촌' '포구의 달' '새터말 사람들' '해변의 길손' 장편소설 '불의 딸' '포구' '아제아제 바라아제' '아버지와 아들' '해일' '동학제' '아버지를 위하여' '해산 가는 길' '꿈' '사랑' '멍텅구리배' '물보라' '초의' 시집 '열애일기' '사랑은 늘 혼자 깨어있게 하고'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 등 한국소설문학상(1980) 대한민국문학상(1984) 한국문학작가상(1985) 현대문학상(1988) 이상문학상(1988) 해양문학상(1997) 현대불교문학상(2001) 등 수상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