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회 째를 맞는 올해 칸 영화제의 초반은 예년에 비해 열기가 덜하다. 개막작인 프랑스 영화 '팡팡 라 튤립'이 상영됐을 때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매트릭스2― 리로리드'가 특별 상영된 이튿날 키아누 리브스 등 미국 배우들이 레드 카펫을 밟을 때 소녀들의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더 크게 들렸다.'팡팡…'에 대해 이곳 언론은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올해 칸의 경쟁작 목록에는 유난히 프랑스 영화가 많다. 쿠엔틴 타란티노, 테오 앙겔로풀로스, 코엔 형제의 신작이 칸 영화제 일정과 어긋나게 되자 칸 영화제 측은 그 공백을 프랑스 영화로 메웠다. 칸 집행위원장인 티에리 프리모는 "칸은 세계 영화예술의 현재뿐만 아니라 프랑스 영화의 우수성을 알릴 의무가 있다. 올해 프랑스 영화의 수준은 어느 때보다 높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과연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제에 선보인 프랑스 영화들이 최근 프랑스 영화의 경향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다. 뤽 베송이 제작하고 제라르 크라비칙이 연출한 '팡팡…'은 크리스티앙 자크 감독의 1952년 작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제라르 필립,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주연한 오리지널 영화는 검객의 활약과 로맨스를 담았으며 그 해 칸 영화제 감독상을 탔다. 크라비칙 감독은 "오리지널 영화를 보지 못한 프랑스인도 팡팡의 이름은 안다. 그는 프랑스 혁명기의 모럴을 대변하는 영웅"이라고 말했다.
오리지널 영화가 나왔던 50년대에는 프랑스 영화에도 대중영화의 전통이 있었다. 50년대 말 지식인 출신의 젊은 감독들이 일으킨 새로운 영화 사조, 이른바 누벨 바그가 프랑스 대중 영화의 전통을 바꿔 놓았다. 제작자와 감독이 되살리려 하는 것은 바로 이 전통이다. 이들은 '팡팡…'을 만들기 전에 '택시 2' '와사비―레옹 파트 2'를 내놓으며 할리우드와 맞먹는 프랑스 영화의 상업성을 증명하려 했다.
뱅상 페레와 페넬로페 크루즈 주연의 리메이크 '팡팡…'은 200여억원의 제작비가 든 국제적 오락 영화. 감독의 말에 따르면 "어린 시절 장난감 칼을 들고 공주를 구출하는 놀이를 즐겼던 아이들에게 꿈을 주는 영화"다. 아이들이 즐길 만한 수준으로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경쾌한 오락 활극인데도 폭발력은 부족하다. 준수한 미남 뱅상 페레는 철 지난 청룽(成龍)의 액션을 되풀이한다. 액션 영화 장르의 즐거움으로 따지자면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만의 운동감과 미의식, 그리고 이야기의 긴장감이 약하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 개막작 아르노 데스플렝의 '남자들의 회사'도 이야기에 무능한 프랑스 영화의 한계를 드러내긴 마찬가지였다. 기업의 상속권을 둘러싼 남자들의 암투를 둘러싼 영화에서 감독은 직선적으로 쭉 뻗어 가는 스토리 전개와 카메라로 자신을 드러내려는 표현주의적 욕망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프랑스의 대표적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 평론가들이 편애하는 젊은 감독인 데스플렝은 칸의 총애도 받아 왔다. 이미 경쟁부문에 오른 적이 있는 그의 신작이 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을까 하는 의구심은 영화를 보면 사라진다. 프랑스 영화의 예술성을 이어가리라는 기대를 받았던 그의 신작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찍고 싶은 감독의 욕망이 흉칙한 뱀처럼 화면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어쨌든 그건 봐줄 만한 게 아니었다. '어느 때보다 높은 프랑스 영화의 수준'을 알게 될 기회는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칸=김영진(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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