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위기에 빠져 있다. 북한 핵문제 미결과 북의 협박, 화물연대의 총파업 후유증,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대한 전교조 반발, 한총련의 5·18 불법 기습 시위와 반정부 활동 선언, 대통령 경호체계의 허점과 청와대 당직실의 기강해이, 새만금 사업 시행 갈등, 공무원 노조의 연가투쟁 예고는 민생과 국가경제 자체를 크게 위협한다.이 상황에도 장관들은 수수방관하고 대통령과 사회세력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다. 심지어 새만금 관련 장관들은 정부를 압박하는 시위에 참가하여 국정혼란을 부추기기까지 한다. 장관이나 핵심 참모들이 사회세력의 대변인 역할에 바빠 중립적인 정부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회세력들은 정권 창출에 공헌한 만큼 스스로 노무현 정부의 대주주로 여기는 듯하다. 이 난국에도 여야 정치권은 자기 잇속 챙기기와 내년 총선 준비에만 골몰하고 있다.
지금 대통령과 정부의 권위가 심각하게 도전 받고 있다. 국가위기관리는 고사하고 일반 행정 시스템도 고장이 났다. 정책이 흔들리고 전문가는 없다. 법과 원칙은 없고 힘과 생색내기가 판을 친다. 포용과 타협은 없고 독선과 편가르기가 어지럽다. 이 지경이 되기까지 원인에서 대통령과 참모 및 정부부처는 자유롭지 못하다. 친노동의 대통령 스타일과 장관의 대통령 눈치보기, 아마추어적인 국가기구 개편과 파격인사가 위기를 키웠다.
미숙한 청와대 조직 개편, 관계기관대책회의나 기존 위기관리체제 해체, 위기대응 컨트롤 타워 부재, 운동권출신 인사중심의 인치(人治), 무기력한 책임총리제와 국무조정실, 부처 할거주의와 책임 떠넘기기, 인적청산과 인사의 전문성 약화, 대선 논공행상 인사와 위인설관, 불법파업 방치 및 비주류세력의 주류화 운동, 신당창당과 정계개편 등이 위기를 키운 요인들이다.
이제 대통령이 먼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상황논리에 따른 변신만이 능사는 아니다. 모르는 것과 준비 못한 것이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 국정운영은 실험이 아니다. 이라크전 파병과 한미공조가 편법으로 이루어졌다는 인식을 주어서는 안 된다. '명분은 없지만 파병한다'거나 '어쩔 수 없어 한미동맹을 강화한다'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정책결정에 당당한 명분과 원칙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정보나 학습에 따라 정책을 변경하면 명분을 확고히 한 후 당사자를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최고 정책결정자로서의 권위와 신뢰가 살아난다. 국정최종 책임자로서 또 최후의 국가위기관리자로서 대통령의 위상을 튼튼히 하는 것이 시급하다.
노무현 정부는 실질적인 개혁정부가 되어야 한다. 구호만 있고 청사진이 없다는 비판을 벗어나야 한다. 구호성 대선 공약과 인수위의 산만한 정책들을 넘어 실질적인 개혁의 비전과 청사진을 국민의 투명한 합의로 제시해야 한다. 그래야만 정책표류가 사라지고 정부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최고 전문가들이 폭넓게 동참해야 한다. 논공행상 인사가 계속되는 한 노무현 정부의 미래는 없다. 코드도 세계수준의 개혁과 전문성이라는 제대로 된 기준에 맞추어야 한다.
초일류국가를 이루는 일이 위기극복과 개혁의 목표다. 경제위기와 안보위기를 넘어 세계적인 국가경쟁력과 복지수준을 실현하는 일이 정부의 당면과제다. 한총련, 전교조 및 노조의 구태의연한 투쟁을 넘어 초일류국가로 나아가는 개혁을 범국민적 지지 위에 추진하는 일이 정부의 임무다.
방미를 통해 초일류 세계수준을 처음 경험한 노 대통령이 새로운 학습을 바탕으로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 원칙과 정도로 지지세력을 설득하고 반대세력을 포용하여 국민통합을 이루고 대통령과 정부의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 위기관리와 국민통합은 동북아중심국가나 초일류국가가 되기 위한 초석이며 대통령의무의 으뜸이다.
김 석 준 이화여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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