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의 연봉과 광고 출연료미국 프로농구(NBA) 불세출의 스타 마이클 조던이나 천재 골퍼 타이거 우즈, 브라질의 축구 영웅 호나우두 등은 남들이 갖지 못한 뛰어난 기량으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팬들은 그들의 뛰어난 경기에 찬탄을 금치 못하며 주말의 귀한 시간을 쪼개고 비싼 관람료를 지불하고 그들의 경기를 구경하려고 애쓴다. 그들이 많은 스포츠 스타 가운데서도 단연 빼어난 기량을 보여주기 때문에 거액의 연봉이나 우승 상금은 당연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그들은 운동 경기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대중은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눈을 빼앗긴다. 대중의 우상이 된 그들은 엄청난 출연료를 받고 온갖 상품광고에 등장한다. 스포츠 스타들의 광고 출연료는 흔히 거액의 연봉을 웃돌기도 한다. 운동 경기에서 발휘한 탁월한 기량 때문에 그들은 스포츠 이외의 영역에서도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부를 획득한다.
조던이나 호나우두 같은 스포츠 스타들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얻는 데는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의 기량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며 그 탁월한 기량은 바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와 명예의 배분을 좌우하는 한 가지 원리, 즉 '능력에 따른 분배'에 부합한다.
그러나 스포츠 스타들의 기량이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더 출중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경기를 보며 즐거워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천문학적 액수의 연봉은 일반인들이 1년 열두 달 열심히 일하고 받는 초라한 연봉과 비교할 때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결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들의 천문학적 연봉을 이해하지 못하며 심지어 분개의 감정을 품기까지 한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근에 허덕이는 상황과 대비해 그들이 받는 보상이 지나치게 많다고 비난하는 국제여론도 있다. 조던이 2,000만달러의 광고 출연료를 받은 스포츠 용품 회사의 축구공을 만드는 파키스탄 소년이 하루 종일 손이 부르트도록 일하고 받는 일당이 1달러도 안된다는 사실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 좋은 예이다.
'능력에 따른 분배'?
물론 이런 사회현상에 대해 냉정하게 경제학적 설명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의 현란한 경기를 보려는 소비자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수요·공급 법칙에 의해 그들의 몸값이 정해지는 것은 세상의 당연한 이치라는 설명이다. 그런 설명을 제시하는 학자들은 그들의 몸값을 올릴 수록 다른 파급효과도 있다고 강조한다. 연봉이 올라가면 선수들은 더욱 자극을 받아 기량 향상 경쟁을 벌이게 되며 그 결과 소비자들은 더욱 기량이 향상된 경기를 관람하려고 더 많은 비용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로켓처럼 치솟는 그들의 연봉은 스포츠 우상을 만들어내고 스포츠산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더욱 고조시켜, 결국 기업가와 구단에 커다란 이득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민한 사람들은 스포츠 스타들이 받는 보상에 대해 도덕적 정당성에 의문을 품는 동시에 그들의 타고난 능력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같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들이 타고난 재능이 그토록 높은 보상을 받아야 할 이유에 대한 의문이다. 스포츠 스타의 재능이건, 뛰어난 예술가의 재능이건, 또는 뛰어난 지적·상업적 능력이건 그것이 자신의 선택이나 노력의 결과로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우연히 타고난 것이라면, 왜 그것 때문에 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보상을 받아야만 하는가? 반면에 지적으로 열등하게 태어났거나, 아무런 예술적·상업적 재능도 없이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왜 그들이 선택하지 않은 그와 같은 불운 때문에 지속적 좌절과 빈곤을 겪어야만 하는가? 능력에 따른 분배는 결국 많은 부분에 있어 운에 따른 분배와 동일한 것이 아닌가?
겉으로 보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능력에 따라 부를 분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능력의 상당 부분은 결국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운에 의해 결정된다면 '능력에 따른 분배'라는 정의의 원리는 결국 운의 자의적 지배를 은폐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재능은 타고난 운
NBA 무대에서 더 많은 부와 명예를 획득할 가능성은 신장과 몸의 유연성, 타고난 운동 신경 등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날 것이다. 이미 정해져 있는 농구 골대의 높이를 전제할 때 키가 크고 유연한 사람과 키가 작고 느린 사람의 성공 가능성은 애초부터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마이클 조던은 남달리 유연한 몸과 재능을 타고났기 때문에 NBA를 통해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성공이 농구를 선택하고 남다른 노력을 했기에 가능했음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비슷한 선택과 노력을 한 많은 선수들 가운데 유독 그가 '농구 황제'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남다른 재능을 타고난 덕분이었다. 축구의 호나우두, 골프의 우즈, 미식축구의 오 제이 심슨도 다를 바 없다.
이런 설명은 남다른 지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과학자나 빼어난 미모와 몸매를 가지고 태어난 배우, 비범한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인물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그들의 타고난 지능과 미모, 예술적 감각은 그들의 선택 이전에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타고난 재능을 살려 얻은 모든 부와 명예를 오로지 자신의 능력과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하며 절대적 소유권을 주장한다면 이를 도덕적으로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까?
'만나'를 얻은 사람들
어떤 사람이 우연히 뛰어난 재능과 미모를 타고났다면 그는 실제로는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고도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을 거저 갖게 된 셈이다. 미국 예일대의 애커먼(B. Ackerman) 교수는 이처럼 운에 의해 거저 주어지는 재능과 소질을 '만나'로 표현한다. '만나'는 이집트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방황하는 동안 여호와 하나님으로부터 매일 공급받았다는 성서 속의 음식이다. 따라서 '만나'란 신의 은총이자, 노력과 무관하게 거저 주어지는 재능을 뜻한다. 운 좋게도 '만나'를 얻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가 우연히 어떤 사람에게 귀속됐다고 가정해 보자. 만나는 천재의 탁월한 지적 능력일 수도 있고 농구에 가장 이상적인 체격 조건일 수도 있으며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브룩 쉴즈처럼 빼어난 미모일 수도 있다. 재벌 2세로 태어나는 행운일 수도 있다. 자신이 아무런 선택과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운 좋게 다른 사람이 일생동안 노력해도 좀처럼 얻기 어려운 부와 명예를 이미 얻었거나 쉽게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경우는 대단히 흔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사람 참 부럽다"거나 "그 사람 참 운도 좋지"하며 지나쳐 버리기 일쑤다. 그러나 이런 예는 자신이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행위만이 책임의 대상이 된다는 '도덕적 책임'의 관점에서 보면 쉽게 정당화하기 어렵다. 그런 경우를 그냥 지나치는 태도는 사실은 인간의 운명을 복권 추첨이 좌우하도록 방관하는 것과 다름없다. 재능의 분배와 복권 당첨은 부의 분배를 운이 좌우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유사하다.
/김 비 환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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