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일본방문이 '현충일 출국' 논란에도 불구하고 일본측과의 당초 합의대로 6∼9일 이뤄지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 당국자는 21일 "현충일에 방일하는 문제로 말이 많았지만 정상회담은 일방의 입장만 고집할 수 없는 외교행위"라면서 "천황예방 등 세부일정까지 조율되면 23일께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현충일 방일을 둘러싼 청와대의 고민은 간단치 않다. 국빈방문(State Visit)이라는 격을 감안하면 방일 첫날, 즉 현충일에 아키히토(明仁) 천황을 예방하고 저녁에 천황 내외가 주최하는 국빈만찬에 참석해야 하는데 여론이 곱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네티즌 사이에는 순국선열의 애국심을 받드는 현충일에 일본을 방문하는 문제를 놓고 '굴욕외교' 논쟁이 시작됐다. 우리측은 뒤늦게 방일을 3∼4일 미루는 방안을 일본에 타진했으나 거절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유럽여행 일정을 포기하면서까지 노 대통령의 방일을 준비해온 일본측은 "합의해놓고선 딴 소리냐"는 반응이다. 일본은 특히 "천황의 일정은 0.0001%라도 변경할 수 없다"고 못을 박은 것으로 전해진다.
당초 '현충일 방일'이 된 것도 국빈방문에 치중한 탓에 일본측 주장에 휘둘린 감이 없지 않다.
우리측은 "현충일을 감안해 3∼5일 국빈방문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일본측은 "6일부터 공식방문(Official Visit)해달라"고 양해를 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과정에서 지일파인 자민련 김종필 총재 등의 지원으로 국빈방문으로 격상됐지만 결국 '현충일 방문'이 돼버린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북핵 문제의 급박성 등이 우선 고려됐고 현충일은 일본보다는 한국전쟁과 관계가 많다고 설명했지만 실무방문(Working Visit)보다는 국빈방문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는 후문이다. 이번 방문에서 노 대통령은 일본국회에서 연설하는 등 최고의 예우를 받는다. 정부 관계자는 "노 대통령의 방미를 놓고 극단적 평가가 나오는 상황에서 일본 방문까지 구설수에 올라 난감하다"면서 "노 대통령은 오전에 현충일 기념식에 참석한 후 일본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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