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금 영화 '황산벌'을 촬영 중입니다. 영화 현장은 긴장이 감돌고, 그래서 영화 하는 사람 중에는 '골초'가 많습니다. 저도 하루 두 갑이 기본이고, 밤샘 촬영이 있을 때는 너댓 갑을 피웠습니다. 제가 담배를 끊으니 주위에서 "참 독하다" "대단하다"고들 하지만 그건 틀린 말입니다. 담배가 싫어졌을 뿐이니까요. 욕망이 없으니, 참을 필요도 없습니다.부끄러운 얘기지만 고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만성적으로 기관지가 붓고, 가래 기침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수영을 할 때면 25m 풀 양끝에 종이 컵을 놓아두고 가래를 뱉아야 할 지경이었으니까요. 물론 운동을 꾸준히 했기 때문에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고, 흡연은 창작자의 '통행세' 같은 것이라고 자위하기도 했습니다.
담배에 대해 의심이 든 것은 7년 전 아들 배승이를 낳은 후입니다. 제가 안아주면 아이가 자꾸 고개를 돌렸습니다. 담배 피우는 가장은 대접을 제대로 못 받습니다. 그 때를 포함, 아홉 번이나 담배를 끊으려 했지만 그 때마다 12시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할리우드 영화 '찰리의 진실'은 배우 박중훈 뿐 아니라 흡연자 박중훈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2000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의 첫 미팅, 그리고 다음해 3월 촬영에 들어가면서 금연은 중대한 과제가 됐습니다. 외국 영화인 중에도 골초가 많지만, 프로듀서, 제작자 등 미국 영화계를 이끄는 사람들은 흡연을 '저급한' 사람들의 고질적인 버릇쯤으로 여기더군요. 그건 '어메리칸 스탠더드'일 뿐이지만, 그렇다고 흡연이 '글로벌 스탠더드'는 아닙니다.
결심을 실행에 옮긴 건 '오기' 때문이었습니다. 2002년 2월 남자 영화배우들의 골프 모임 '싱글벙글' 팀이 제주도에 라운딩을 갔습니다. 공항 흡연실에서 모두 담배를 피우고 사람들이 구경 삼아 모여 들었는데, 저는 갑자기 흡연실에 들어가기 싫었습니다. 안성기 선배를 비롯, 한석규 김승우 이성재 정준호 등 동료와 후배들이 "얼마나 가나 보자"며 농담 섞인 야유를 보냈습니다.
물론 처음 일주일간은 밤마다 비슷한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고, 이 때마다 물을 마셨습니다. 금단 증세지요. 저는 금연용 패치의 도움을 톡톡히 받은 편입니다. 패치는 금단현상을 막을 정도로 최소한의 니코틴을 몸에 공급해 몸이 못 견디는 것을 막아 주었습니다. 3주 정도 지나니 패치 없이도 담배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금연 며칠 후, 정 담배를 피우고 싶다면 한번 피워도 좋을 것 같군요. 어지러움, 메스꺼움…. 담배가 얼마나 독한 지 알게 됩니다. 물론 이걸 참고 다시 익숙한 지경에 이르면 안되겠지요.
금연의 좋은 점? 일단 구차할 필요가 없습니다. "담배 한 대 피워도 될까요" 하고 양해를 구할 필요가 없지요. 현장 밤샘 촬영도 덜 피곤하고 "호흡기 질환으로 죽을 지 모른다"는 쓸 데 없는 불안감도 사라지고, 심지어 서울 공기도 맑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아이들이 보내주는 애정이야말로 바꿀 수 없는 금연의 매력이지요. 중독을 이겨낸 자신이 한없이 자랑스러워지고, 거기서 얻은 자신감은 다른 일에도 큰 활력을 줍니다. 처음엔 어려울 것 같지만, 일단 끊고 나면 이보다 쉬운 게 없는 게 금연입니다. 담배 끊는 걸 어렵다고 생각말고, '우습다'고 생각해 보세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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