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은 법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절대적 존재다. 특히 우리 같은 정서지배적인 사회문화 구조에서 대통령직은 우월한 지도자의 현실적 역할, 그리고 그런 상징성을 요구받는 자리다. 때문에 대통령의 책임은 자연인의 상식적 범주를 넘는 막중한 것이다.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고 했다. 그는 또 "위기감이 든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으로서 한 말인지, 아니면 아직도 동지적 유대를 갖는 재야세계의 일원으로 한 말인지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의 내용이다. 나라의 위기를 대통령이 모르면 누가 수습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말인지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적 5·18행사가 심각한 차질을 빚은데 대해 광주의 지도급 인사들에게 서운한 감정을 표출하다 나온 말이라고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을 노 대통령은 했다.
나라의 기강이 허물어진 것은 분명 위기다. 노 대통령 지지세력으로부터 지지 철회의 조짐까지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시위와 비난, 비판이 이어지는 난국의 책임을 시위대로 돌리는 발상이야말로 진짜 위기다. 대통령이 그런 심정에 빠진 상태가 얼마나 큰 위기인지 노 대통령은 그 것부터 깨달아야 할 것 같다. 그의 인간적 고충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 것은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공직자로서의 의무가 그에게는 있다. 전세계의 지도자들이 모두 그렇게 고통스럽게 일하고 있다.
그는 "국가기강이 마비될 수밖에 없다. 전부 힘으로 하려고 한다"고도 말했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갈등의 시기에 봉착한 게 사실이다. 그럼 그 갈등을 누가 어떻게 풀고 수습해야 하는가. 이럴 때 필요한 게 지도자이고, 리더십이다. 나라를 위해 그런 일 하라는 기대와 요구로 뽑히는 게 대통령이다. 지금 노 대통령은 이런 기본적 원리를 모르겠다고 무책임한 고백을 하고 있는 셈이다. 국민은 누구를 믿으라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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