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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가정폭력 시달린 30년은 지옥"/만취 아버지 살해한 네 모녀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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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가정폭력 시달린 30년은 지옥"/만취 아버지 살해한 네 모녀 "눈물"

입력
2003.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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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간의 지옥 속에서 이제야 탈출한 것 같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21일 오후 서울 남부경찰서 형사계사무실. 전날 50대 가장을 살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네 모녀는 감정이 격해져 눈물을 쏟아냈다.어머니 정모(53)씨와 조모(31)씨 등 세 딸은 전날 밤 10시30분께 어김없이 만취한 채 귀가한 아버지 조모(56)씨를 맞았다. 조씨는"반찬이 시원치 않다"며 트집을 잡더니 "집에 불을 질러버리겠다"며 재떨이 등을 마구 집어던지는 등 술주정을 부리기 시작했다. 딸들이"이럴 거면 차라리 어머니와 갈라서라"고 매달렸지만 행패는 4시간여나 계속됐다. 새벽 2시께 잠시 누그러졌던 조씨가 다시 고함을 질러대자 정씨는 이불을 뒤집어 씌우고 두 딸의 도움아래 목을 눌러 숨지게했다. 거실에서 숨죽이고 있던 둘째 딸은 이런 모녀의 돌연한 행동을 차마 제지하지 못했다.

현재 식당종업원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정씨는 1971년 언니의 중매로 조씨와 결혼 한 뒤 30년간 가죽공장 봉제공장을 다니면서 네 딸을 모두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하지만 마땅한 직업도 없이 이곳저곳을 전전하던 남편은 툭하면 술을 마신 채 집에 들어와 폭행을 일삼았다. "모두 죽여버리겠다"며 식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유리컵을 깬 뒤 파편을 질겅질겅 씹으며 폭행을 말리는 딸들을 위협하기도 했다. 또 조씨가 도박에 심취해 집을 날리는 바람에 정씨 가족은 최근 빚을 얻어서야 겨우 현재의 연립주택으로 옮길 수 있었다. 남편의 상습폭행을 견디지 못한 정씨는 딸들과 함께 그간 수차례나 가출을 시도했지만 다시 남편에게 붙잡혀 돌아오곤 했다.

첫째딸은 "그동안 아버지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지만 실제로 죽이게 될 줄은 몰랐다"며 "가정폭력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지른 일인만큼 선처를 바란다"고 울먹였다. 경찰은 21일 세모녀에 대해 살인 및 존속살인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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