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한국에 살면서]경이로운 "빨리빨리 자장면"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한국에 살면서]경이로운 "빨리빨리 자장면"

입력
2003.05.22 00:00
0 0

나는 한국에서의 토요일을 좋아한다. 컴퓨터를 끄고 텔레비젼을 켠 뒤 느긋한 마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중국집인 흥부각으로 전화 다이얼을 돌린다. 흥부각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 잘 알고 있어서 뭘 시키고 싶은지 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냥 "여기 소만 마을 9단지..."하면 아파트 동, 호수를 말하기도 전에 "알겠습니다" 하며 걸걸한 여자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전해온다.그리고 몇 분만 지나면 오토바이 헬멧을 쓴 배달부 아저씨가 우리 집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른다. 자장면 값 2,500원을 건네며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지?'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면 채 생각을 접기도 전에 배달부는 벌써 가고 없다.

더 좋은 점은 맛있는 자장면을 후루룩거리며 먹고 난 후 빈 그릇을 설거지 할 필요도 없이 문 밖에 내놓고 텔레비전을 보며 꾸벅꾸벅 졸고 있으면 배달부가 다시 와서 달그락거리며 그릇을 챙겨 간다는 것이다. 이런 서비스는 미국과 비교하면 거의 축복에 가깝다.

요즘 나는 다음 달에 캘리포니아에서 있을 결혼식 준비로 바쁘다. 음식을 주문한 케이터링 업체 주인, 사진사, 그리고 꽃집 주인과 협상을 하고 있다. 그들과 얘기를 나눌 때마다 나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공항의 무빙 벨트를 탔거나 모래사장을 뛰어가고 있는 느낌이 든다.

한 예로 음식주문업체 사람과는 얘기를 시작한 지가 1년이나 된 듯한데도 아직도 우리 계획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수많은 결혼식을 치렀다고 선전하면서도 끊임없는 질문들로 나를 귀찮게 만든다. "에피타이저는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어떤 식으로 음식을 차릴까요?" "디저트와 샐러드가 포함된 풀 세팅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포크와 나이프만 하시겠습니까?" 미국에서는 이처럼 모든 것이 오래 걸린다.

이 모든 과정이 멋진 결혼식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젓가락 한 쌍과 "알겠습니다" 하는 흥부각에서 일하는 여자의 걸걸한 목소리일 뿐이다. 그리고 헬멧을 쓴 배달부들이 나타나 음식을 차려주면 우리는 맛있는 면을 재빨리 먹어치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와 나의 신부가 첫 번째 노래에 맞추어 춤을 추는 동안 배달부들이 다시 와서 빈 그릇들을 모두 되가져 가 주었으면 좋겠다.

웨인 드 프레머리 미국인 서울대 국제 지역원 석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