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에이스 정민태(33)는 선발등판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김시진 투수코치로부터 비밀장부를 넘겨받는다. 비밀장부에는 상대팀 타자들의 장단점과 선호하는 구질, 약한 코스, 최근경기 성적 등이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정민태는 비밀장부를 토대로 김코치와 타자들을 공략할 비책을 수립한 후 마운드에 오른다.정민태는 20일 잠실에서 벌어진 2003시즌 프로야구 정규리그 LG전을 앞두고 평소처럼 상대타자 분석표를 면밀하게 살펴본 후 출장했다. 이전경기까지 8경기에 등판, 7승무패를 기록하며 2000년 7월30일 두산전(수원)이후 선발로만 14연승을 달리고 있는 정민태의 연승행진여부가 이날 경기의 관심사였다.
7회말 2사까지는 정민태의 연승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팀이 3―1로 앞선 가운데 맞이한 7회말 수비에서 정민태는 선두타자 이병규에게 2루타를 맞았다. 그러나 최동수를 외야플라이, 안상준을 삼진으로 돌려세워 한숨을 돌렸다. 2사 3루의 실점위기가 계속됐지만 후속타자가 무명의 김상현(23)이어서 무난히 이닝을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2000년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기아에 입단했다가 지난해 7월31일 LG로 트레이드된 김상현은 지난시즌까지 1군경기에 출장한 게 고작 47번. 선수들사이에서 조차 잘 알려지지 않았던 김상현을 맞이한 정민태는 빠른 직구를 던졌다. 초구가 한가운데 높은쪽으로 들어오자 김상현은 지체없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 하는 타구음과 함께 정민태는 고개를 떨궜고 김상현은 두 손을 불끈 치켜세웠다. 동점 투런홈런이었다. 비밀장부에도 특기사항이 별로 없었던 김상현을 얕잡아 본 게 화근이었다. 의기소침한 정민태는 8회말 1사 1,2루에서 최동수에게 홈런성 2루타를 맞고 4―3으로 역전을 허용한후 마운드를 내려왔다. 팀타선이 9회초 동점을 만들어 패전투수는 면했지만 무명의 김상현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목전의 1승을 날려버린 셈이다. 김상현의 동점홈런으로 기사회생한 LG는 연장 10회말 최동수의 끝내기안타로 5―4로 신승했다. 현대 소방수 조용준은 이날 패전투수가 돼 12경기연속 세이브행진을 마감했다.
기아는 광주경기에서 이종범(사진)이 연타석홈런을 포함, 4타수 3안타 4타점의 원맨쇼를 펼친데 힘입어 롯데를 6―0으로 제압하고 2연승을 달렸다. 이종범은 개인통산 22번째 1회말 선두타자 홈런을 기록했고 기아 선발 리오스는 7이닝동안 삼진 8개를 잡아내며 4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 시즌 4승째를 따냈다.
SK는 인천경기에서 선발 스미스가 7이닝동안 7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한 것을 발판삼아 김동주의 만루홈런으로 추격전을 벌인 두산을 6―5로 따돌렸다. 대전경기에서는 삼성과 한화가 연장 12회 접전끝에 2―2로 비겼다.
/정연석기자 ys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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