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농사와 금속기 문화가 큰 특징인 일본의 야요이(彌生) 시대가 통설인 BC 5∼4세기보다 500년 정도 거슬러 올라간 BC 10세기에 시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은 규슈(九州) 북부에서 출토된 야요이시대 전기 토기의 연대를 최신의 방사성탄소(C14) 연대측정법으로 분석한 결과 BC 10세기께 제작됐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발표했다.이 같은 연구 결과가 인정될 경우 일본 역사 편년의 수정이 불가피하며, 야요이 문화의 주역이 한반도계 도래인이라는 점에서 한일 교류사도 시기가 앞당겨지게 된다. 또 야요이 전기의 청동기 문화 및 후기의 철기 문화 도입 경로 등과 관련, 한반도와 중국의 금속기 시대 편년도 수정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하루나리 히데지(春成秀爾)·이마무라 미네오(今村峯雄) 교수를 중심으로 한 박물관 연구팀은 2001년부터 조사 대상 토기를 미국의 전문기관에 맡겨 가속질량분석계(AMS)를 이용한 최신의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결과 이 같은 결론을 얻었다. 연대 측정에 사용된 시료는 후쿠오카(福岡)시 사사이(雀居)유적 등 야요이문화가 상륙한 것으로 여겨져 온 대한해협 연안과 도호쿠(東北)지방, 한국 김천 송죽리 유적 등에서 출토된 토기에 부착한 탄화물(炭化物)이나 그을음 등 32점이었으며 이중 야요이시대 전기 토기 11점 가운데 10점의 연대가 BC 900∼800년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일본 열도에서 본격적인 벼농사가 시작된 시점의 토기는 이번 연대 측정 대상보다 더 오래된 양식이었음을 들어 "야요이 시대가 BC 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시작됐을 가능성이 커졌다"며 "중국의 은(殷)이 멸망하고 서주(西周)가 성립된(BC 1027년) 무렵의 시대 배경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의 야요이 시대는 BC 5∼4세기께 중국 전국시대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서 다수의 도래인이 벼농사 기술과 청동기 문화를 갖고 일본 열도로 옮겨 오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일본 학계의 정설이었다.
이날 발표에 대해 일부 일본 전문가는 "BC 1000∼800년 요동반도와 한반도 남부에까지 퍼진 벼농사가 일본에 전래되는 데 500년 이상 걸린 의문점이 풀리게 됐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동북아의 청동기·철기 전파 경로와 시기적 모순이 있으며, 다른 연대측정법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고, 당시의 동북아 정세에 미루어 보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 등을 들어 판단을 유보했다.
국내 전문가들도 모순점을 지적하고 AMS 측정법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도 측정 결과가 사실로 확정될 경우 일본 고대사는 물론 우리 고대사의 대폭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밀양대 박물관 곽종철 학예연구원은 "AMS가 최신의 연대 측정법이긴 하지만 오차가 커서 고고학계에서는 반신반의하는 형편"이라며 추가 연구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상길 경남대 교수는 "일본 야요이 전기 토기와 형태가 비슷한 경남 진주 남강 수몰지구 출토 각목돌대문(刻目突帶文) 토기의 연대가 BC 10세기로 확정되는 등 최근 2, 3년 사이 일본에 전래돼 야요이 문화를 낳은 한반도 무문토기의 연대가 크게 앞당겨지고 있다"며 "후속 연구를 통해 야요이 토기의 연대가 비슷한 시기로 확정된다면 그 동안 500년이란 한일 토기 연대의 시차가 해소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야요이 시대 편년이 수정된다면 일본은 그 동안 BC 300년∼AD 300년 전후로 잘 짜놓은 야요이사를 완전히 새로 쓰든지, 직전의 조몬(繩文) 시대와 야요이 시대 사이에 새로운 문화를 상정해야 할 형편이며 동시에 한반도의 토기 편년도 크게 수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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