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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패트롤] 핵폐기장 찬반 휩싸인 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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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패트롤] 핵폐기장 찬반 휩싸인 전북

입력
2003.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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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폐기물 관리시설(방폐시설) 유치 공방으로 전북도가 들썩이고 있다. 2월 방폐시설 4개 후보지 중 하나로 선정된 고창 주민들은 대책위를 꾸려 반대투쟁에 나섰고, 반대 불길은 도 전체로 번졌다. 그런데 후보지에서 빠진 부안군 위도 주민들이 최근 방폐시설 유치를 선언하며 엇나가기 시작한 것. 거기다 전북지역 12개 대학이 "취업난 해소와 지역 발전"을 명분으로 유치 논리에 가세했다. 반대 일변도인 경북 울진과 영덕, 전남 영광 등 나머지 후보지와는 사뭇 다른 양상. 혼란스러운 주민들은 지역 민심을 갈라놓은 주범이 누구인지 묻고 있었다."이왕 베린 몸, 빚이나 갚을라네."

전북 부안군 변산면 격포항에서 40분 뱃길인 위도면 '고슴도치섬' 위도(蝟島)는 핵 때문에 달떠 있었다. 섬 전체가 술렁이긴 10년 전 2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서해훼리호 사고 이후 처음이라고 했다. 위도 방폐저장소 유치위 정영복 위원장은 "안전에도 이상이 없고 지역경제에도 보탬이 된다고 한께, 고창에서 안하믄 우리가 할 참이여"라고 말했다. 그는 뭍의 반대여론을 의식한 듯 "방폐장은 우리 섬에, 양성자가속기는 뭍에 주믄 전북이 발전하는 것이요. 법성굴비는 원전 법성포 물로 간질해도 없어 못 팔드만"이라고 했다.

방폐시설 유치를 위한 위도 주민들의 마음은 콩 볶듯 급하다. 9일 대덕 원자력연구소 견학, 11일 주민공청회에 이어 5일만에 섬 주민 1,000여명 중 900명이 서명을 했다. 곧 군의회에 청원서를 낼 참이다.

옥빛 바다와 청록빛 산세가 어우러진 위도 곳곳의 어촌 풍경은 그림 같지만 멸치 말리고 아귀 배 가르는 주민들의 낯은 밝지 만은 않다. 방폐물이 좋아서 저장소를 유치하겠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신모(58)씨는 "거시기(환경전문가)보다 못 배운 우리가 더 잘 알어. 영광원전 땜시 바다에 썩은 내(냄새)가 진동을 하는디다 새만금까지 그래 놔서 이왕 베린 몸인게…." 치도리 박병철(67) 할아버지의 푸념이다. "우린 하고 싶은 줄 알어? 이녁 속도 모르면서…." 그래서 정작 방폐시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우리는 방폐장이 뭔지도 몰라라. 빚 갚아준다고 한께 그라재. 당장 먹고 살기 팍팍한디 후대가 먼 소용이여, 빨리 보상이나 해주쇼." 대리 서진녀(57·여)씨는 고함을 질렀다.

"글케 좋으믄 청와대 앞에다 지으쇼"

고창읍 삼흥동 시장 한 가구점. 딸네 마실 나온 김선례(71) 할머니가 방폐시설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시방은 농약만 쪼까 쳐도 새끼들마저 고개를 절레절레 하는디 핵 묻으면 기자 양반은 사 묵겄소." 조선덕(65) 할머니는 "글케 좋으믄 청와대 앞에다 지으라고 크게 써주쇼. 세금 들어가는 보상도 필요 없고 얼매나 좋소"라고 했다.

고창 주민들이 방폐시설을 한사코 반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핵폐기장·핵발전소 추방 범고창군 대책위 김종권(36) 차장은 "중저준위 핵폐기물만 처리한다고 하지만 일단 보안구역이 되면 일반인은 출입할 수 없어 고준위 폐기물을 처리해도 모를 일"이라며 "중저준위 처리시설도 일본 아오모리(靑森)현 로카쇼무라 처분장처럼 사고가 안 나라는 법 있냐"고 주장했다.

주민들의 설명은 좀 더 현실적이다. "영광을 보란께, 원전 6개에 15조원을 쏟아 부었는디 발전됐는가." 김재선(56) 할아버지는 고창의 반골 기질을 들었다. "옛말에 북 오산. 남 고창이란 말이 있소. 왜정 때 철도 반대해서 발전 안됐다고 한디, 고것도 왜놈들 쌀 수탈 막을라고 한 것이여."

하지만 정작 후보지로 선정된 해리면 광승리 32가구 주민들은 위도처럼 방폐시설 유치를 기대하고 있다. "날 좋으면 영광원전 뚜껑이 보일 정도로 가차워(4㎞) 피해는 피해대로 입고 보상은 한푼도 못 받았응게." 핵 반대 플래카드를 내건 인근마을 처사에 주태돈(60)씨는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우리덜도 옛날엔 열나게 원전 반대투쟁 했당게. 그땐 모른 척 하드만 왜 인자 와서 그란지 모르겄소."

"툭 까놓고 토론회 하잔께요."

위도에도 방폐시설 반대 목소리가 있고, 고창에도 반기는 주민이 있었다. 한 마을에 대책위와 유치위가 공존하고 서로 삿대질이 오가는 현실이 주민들로서는 방폐시설 자체보다 더 곤혹스럽다. 이를 두고 주민들은 '정치하는 것들의 분탕질과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음모 탓'으로 이해했다. 고창의 한 주민은 "뭔 일을 그렇게 한다요. 어딘가엔 지어야 한다믄 왜 꼭 고창인가 잘 설명해야지, 우악시럽게 편 갈라 갖고 싸우게 만드니까 열 받재." "잡것들이 주민 갈등만 부추기고 있으니(고창)." "암 것도 모르는 우리덜을 물고기 맹키로 살랑살랑 돈으로 꼬신디 안 넘어가(위도)." "토론회 좋아하는 양반(대통령)이 왜 이렇게 중요한 국책사업은 주민 토론회 한번 안 한다요. 검사들보다 땅 파서 꼬박꼬박 세금 바치는 순박한 시골 사람들이 진짜 국민인디." 진짜 국민, 고창 최양오(36)씨의 말이다.

/고창·위도=글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사진 원유헌기자

■방폐시설 주변지역에 3,000억 지원 "당근 제시"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은 원자력발전소와 병원 등지에서 나온 옷 장갑 필터 등 중저준위 폐기물과 사용후 핵연료인 고준위 폐기물을 처리하는 시설이다. 정부는 2월4일 방폐시설 후보지로 발표한 경북 울진 등 해당지역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자 양성자가속기 사업과 연계하는 방법으로 7월15일까지 자율유치, 신청을 받고 있다. 1,286억원 규모인 양성자가속기사업은 BT(생명공학) NT(나노기술) 등 응용분야가 다양해 주변에 과학기술단지나 산업단지가 조성될 것이라는 게 산업자원부의 설명이다.

전북이 들끓고 있는 것도 "낙후된 전북 개발과 지방대 취업난 해소" 등 의 당근 때문이다. 산자부는 최근 방폐시설 유치에 따른 주민 지원을 담은 발전소 주변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지원금은 380만㎾급 원전 지원금에 상응하는 3,000억원이며, 공공시설 확충과 소득증대 및 장학사업, 주민복지나 기업유치를 위한 융자사업 등에 활용된다. 대상은 방폐시설로부터 반경 5㎞ 안에 속하는 읍·면·동이다. 하지만 대책위는 "양성자가속기 사업이 결국 재앙을 부를 핵 변환사업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찬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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