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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숲 이야기 / 고흥 금탑사 비자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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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숲 이야기 / 고흥 금탑사 비자나무숲

입력
2003.05.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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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좋은 바둑판을 갖고 싶어한다. 좋은 바둑판이라 하면 보통 비자나무와 은행나무, 가문비나무 원목을 최고로 친다.구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이 피살되기 직전까지 소장했던 바둑판을 갖고있던 일본의 한 수집자가 1994년 이를 한국기원에 기증하였던 일이 있다. 비자나무로 만들어 진 이것은 최고급 바둑판은 아니지만 역사와 명성 때문에 소위 명반(名盤)의 대열에 들어간다. 명반이라고 알려지면 보통 집 한 채 값을 호가하기 때문인지 비자나무는 옛날부터 우리나라 남부지방 곳곳에 심어져 애지중지 관리되었던 귀중한 나무였다.

고흥 금탑사는 신라 선덕여왕 6년에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금탑사의 비자나무는 사찰 창건 후 300∼400년이 지난 1700년 이후에 식재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해도 30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으니 짧은 세월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 숲도 해방과 6.25전쟁의 혼란기에 벌채되고 훼손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러나 현재는 금탑사와 고흥군에서 비자나무림 내 모든 나무에 번호표를 붙여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여기에 있는 비자나무들은 수고 9∼14m, 가슴높이 직경이 16∼101cm까지 다양하다. 비자나무림은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가지와 잎이 무성하다. 그래서 비자나무의 후계목은 거의 볼 수가 없고 그 속에 맥문아재비, 된장풀, 마삭줄이 매우 드물게 자라고 있다.

현재는 3,900평에 3,313그루의 비자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고려사, 세종실록지리지, 동국여지승람, 조선왕조실록 등에 비자나무의 분포지역과 조정에 바치는 세공(歲功)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날에는 비자나무 분포지역이 더 넓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제주도나 전남지역에 비자나무를 심었던 이유도 바로 조정에 세공을 바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금탑사는 사찰림인 비자나무림에서는 매년 20∼30가마의 열매를 수집, 떡이나 강정을 만들어 신도들과 나누어 먹었으나 요즘에는 손이 모자라 과거의 반 정도 밖에 수확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금탑사 비자나무숲 가장자리에는 가을이면 석산이 핀다. 석산은 일본에서 도입되어 절 주변이나 가정에 관상용으로 심는 꽃으로 무리지어 자라는 특성이 있다. 이른 봄 짙은 녹색의 잎이 무성하다가 9월이면 잎이 사라지고 꽃대가 길게 올라와 붉은색의 꽃이 무리지어 피는데,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비자나무림 주변의 숲에는 율곡 이이선생의 부친이 호환이 두려워 심었다는 나도밤나무, 푸조나무, 솜대, 비목, 개서어나무, 곰솔 등 남부지역 수종과 온대지역 수종인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까치박달, 느티나무, 벚나무, 쪽동백 등 함께 자라고 있다. 그리고 그 숲의 하층에는 참취, 나비나물, 송악, 대사초, 남산제비꽃, 꿩의다리아재비 등이 자생하고 있다. 300년을 이어온 비자나무숲을 잘 가꿔 미래에 이어줄 책임은 우리의 몫이다.

최명섭 임업연구원 박사(hnarbor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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