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쇼와 오락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방송사 예능국 피디이다. 1986년 방송사 입사 이래 예능국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공익성 프로그램의 대표주자로 회자된다. 96년 '이경규가 간다'('일요일 일요일밤에'의 일부)로 시작된 교통신호와 정지선 지키기를 비롯해 98년 '칭찬합시다'(21세기위원회)의 칭찬운동, 2001년 시작된 '하자하자'(느낌표)의 고등학생 아침밥 먹이기, 폭주족에게 헬멧 씌우기 등 그의 제안은 온사회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책을 너무 오락화한다는 비판 속에 계속된 '책책책을 읽읍시다'(느낌표)는 전국민에게 책을 읽히자는 북스타트 운동과 전국에 도서관을 짓는 운동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기적의 도서관' 프로그램에 따라 지금 짓고 있는 도서관만 해도 11개나 된다. 또 사람들은 '아시아 아시아'(느낌표)를 보고 울고 웃으며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되새겨 본다. 김영희(43·문화방송 예능국 팀장) 피디. 그가 지금같은 공익적인 인간이 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청소년기의 친구들"이라고 대답했다.― 이렇게 공익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이 쇼·오락 프로그램 피디라니, 특이하다.
"내가 원래 굉장히 오락적인 사람이다. 86년 입사해서 3개월동안 순환근무를 하는데 드라마 교양제작국 다큐(멘터리 부서)를 다 돌아다녔지만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쇼프로그램 제작현장에 갔는데 음악 조명 세트를 보니까 가슴이 쿵쿵 뛰더라. 내가 만드는 프로그램도 정확히는 쇼장르다. 요즘 오락 피디는 교양틱해지고 교양 피디는 오락틱해졌다. 오락 피디들더러는 '질좀 높여라'하고 교양 피디들더러는 '재미있게 만들어라'하니까. 내게 그런(공익적인) 성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학교도 사범대(서울대 국어교육과)를 나왔고. 입사 후 쇼피디를 하면서도 몇 년동안 책상 밑에 (신문)만평 하나를 붙여놓고 있었다. 여중생이 걸어 가는데 책가방이 너무 무거워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그림이었다.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찌들어있는 것이 가슴이 아팠다."
― 그런 관심사가 반영된 것이 '느낌표'인가.
"처음에는 꼭 청소년들을 겨냥하진 않았다. 다만 TV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것이 청소년인데 청소년이 봐도 좋은 오락프로그램이면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무작정 90분을 달라고 했고 그때 제안한 기획이 '가장 잘나가는 엠씨 다섯명과 가장 공익적인 버라이어티를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책책책' '하자 하자' '박경림의 길거리 특강' 이렇게 세가지 아이템으로 꾸몄다. '하자 하자'는 폭주족에게 헬멧을 씌우자는 것을 먼저 기획했다. '느낌표'가 시작된 시기가 11월인데, 겨울에는 폭주족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밤새 다른 아이템을 찾다가 신문에 '학생들이 아침밥을 못 먹고 간다'는 기사를 발견했다. 그래서 아침밥 먹이기를 먼저 시작했고 프로를 진행하다가 0교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어 0교시를 없애자는 것으로 바뀌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학생들을 동시대로 비교해 주었다. 아침 6시면 거긴 깜깜한데 우리는 학생들이 움직이고 7시면 우리는 수업을 시작한다. 오전 9시가 되어야 거기 학생들은 1교시가 시작되어서 쌩쌩하게 토론하고 수업하는데 우리 학생들은 전부 엎어져 자거나 졸고 있다. 이 방송이 나가자 뉴스데스크가 다루고 교육청에서도 문제를 삼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우리 사회 전체가 그런 경쟁을 원하기 때문에 문제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그게 끝나고 헬멧을 했고, 지금은 청소년 요금을 다루고 있다. 버스요금을 중·고등 학생에게만 할인해주는데 학교에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모든 청소년들이 할인혜택을 받게 하자는 것이다. 버스요금 뿐 아니라 지하철 박물관 미술관 놀이공원 미용실 등 모든 분야에서 청소년 혜택을 정착시키고 싶다."
―청소년들에게 관심이 많은 이유가 있는가.
"여성문제나 노인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그런데 여성문제는 드세다고 해서, 노인문제는 칙칙하다고 해서 시청률이 잘 안 나온다. 시청률도 잘 나오게 하면서 이 문제들을 다룰 방법을 찾고 있다. 청소년은, 우리 사회가 집단 최면에 걸려서 청소년들을 학대하는데도 그걸 모른다. 청소년의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다. 가령 새벽 여섯시부터 자정까지 학생들을 책상에 앉혀놓는데, 이건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소해야 할 일이다. 수업시간을 줄여야 하고, 교실에서 하는 수업은 오전으로만 끝내고 오후는 뛰고 놀면서 음악 미술 체육을 해야 한다. 1999년 영국에 연수갔을 때 보니 고등학생도 오후 세시 반이면 수업이 끝나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고 논다. 이런 애들이 대학 가면 공부도 더 잘한다."
―무엇이 지금의 김영희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가.
"친구들이다. 학교 다닐 때 나는 천방지축이었고 온갖 말썽을 다 부리고 다녔다. 어머니가 늘상 '넌 공부를 못했으면 (학교를) 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때부터 소풍가면, 시험 끝나면 늘 술을 마시고 뒤풀이를 했다. 12년 내내 반장이었는데 중학교에서 선생님 도시락이나 통닭을 챙기는 걸 반장이 한다. 어머니는 늘 생맥주 6캔을 함께 싸주셨다. 그러면 세 개 정도는 빼돌려서 친구들과 먹었다. 소풍 가서 패싸움 하는 데도 빠지질 않았다.(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코 옆과 턱밑 입술 밑에 꿰멘 흔적이 뚜렷하다.) 그런데도 나는 한번도 혼난 적이 없다. 중 3때는 패싸움이 크게 나서 30명이 정학됐는데 나만 빠졌다. 교무실 복도에 30명을 죽 세워놓고 (교사가) '너 뭐야'하면서 혼내고 오다가 끝에 내가 있으니까 '김영희, 너는 들어가' 했다. 처음에는 빠졌다는데 안도감이 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무지 복잡해졌다. 그래서 다시는 친구들을 두고 나만 빠져나오는 짓은 하지 않겠다, 나쁜 일이 터지면 책임은 내가 지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체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친구들 중에는 단칸방에서 자취를 하는 아이들도 있었고 주먹서클에 있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세상을 많이 알게 됐다."
―그러니까 당신한테 영향을 준 사람은 교사도, 존경하는 인물도 아니고 친구란 말인가.
"그렇다. (공부 잘하는 친구도 있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함께 다닌 친구가 2명 있는데 걔들한테 영향을 많이 받았다. 중 2때 국어교사가 애들 몇 명을 불러 인천으로 4박5일 놀러 간 적이 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여관방에서 하루 종일 이야기만 했다. 친구들이 '상록수' '유정' '무정' 책을 이야기 하는데 나는 읽은 것이 하나도 없어서 부끄러웠다. 그 다음부터 쪽팔리지 않으려고 책을 열심히 읽었다."
―'아시아 아시아'는 불법체류자를 옹호하고 '하자 하자'는 공교육에서 떨어져나간 일탈 청소년을 대변한다, 왜 힘없는 버스회사를 흔드나, 같은 비판도 있는데.
"우리는 불법 체류자를 합법화시켜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들의 인권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전쟁 중에도 적십자는 적군과 아군의 생명을 모두 치료한다. 청소년 요금 할인을 주장하는 과정에서 대안학교 학생이 자주 나오니까 '극소수'의 입을 빌어 공교육을 무시한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극소수' 이야기를 통해서 공교육이, 우리 사회 전체가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버스 요금 경우는 정말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인데 서울시내버스운송조합이 서울시에 청소년 요금을 먼저 제안해야 성사된다. 조합이 제안하려면 버스 회사 하나 하나가 생각을 바꿔야 한다."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청소년 요금할인" 인터넷 논쟁 한창
'느낌표'가 다루는 청소년 요금 할인은 인터넷에서 논쟁중이다. 청소년요금제가 정착되도록 서명운동을 벌이자는 사이트가 등장했는가 하면 '시내버스 요금을 정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버스운송조합인데 버스회사에 가서 요청하는 것은 방송의 횡포' '가뜩이나 버스회사가 적자인데 청소년 요금까지 강요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그러나 학생이 미래의 주역으로서 현재 경제력이 없기에 할인 혜택을 받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똑같은 입장인 청소년에게로 혜택을 확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당연하다. 문제는 거기에 들어가야 하는 돈. 청소년을 일단 중·고등학생 나이인 13∼18세로 잡았을 때 대한민국의 이 나이 인구는 377만 1,603명. 이 중 368만 2,624명이 중·고등학교를 다닌다.(통계청과 교육인적자원부 자료) 따라서 청소년 할인혜택으로 범위를 늘리면 8만 8,979명에게 혜택이 돌아가 부담은 2.4% 정도가 늘어난다.
학생들도 학생증을 제시하고 발급받는 학생카드로만 교통기관 요금 할인을 받는다. 청소년 요금제를 지지하는 이들은 동사무소가 청소년증을 발급해주면 이를 통해 청소년 할인카드를 만들 수 있다고 제안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