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신용이라는 말이 신문지상에 나오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신용대출, 신용카드, 신용도, 신용위기, 신용대란…. 신용이란 말은 이제 한국 사회의 필수 키워드가 됐다.우리 사회가 선진화되어가는 한 징표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제레미 리프킨이 '소유의 종말'에서도 언급했듯이 인간의 소비 형태가 소유 보다는 '접속'에 치중해 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유보다 접속이 우선인 현대사회에서는 접속을 얻기 위한 신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신용이 없는 이가 '접속권'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현대사회에서 신용이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어떤 물품이나 서비스도 얻을 수 있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와도 같다. 경제성장과 더불어 신용산업도 급성장하면서 알라딘의 요술램프는 어디에서나 쓰여진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램프 주인들의 경제인식은 물론 사회적 여건과 법과 제도적 장치가 미처 램프의 효용에 미치지 못해 최근의 신용위기 등을 자초하고 있다.
얼마 전 삼성캐피탈이 실시한 전국 소비자조사에 따르면 대출이용자 중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이용경험률은 평균 65.6%이나 20대 후반은 71.2%, 30대 초반은 72.7%로 상대적으로 높다. 대출액 중 현금서비스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평균 29.5%인데 비해 20대 후반은 34.9%로 젊은 층의 잠재적 신용불안을 감지할 수 있다. 지난 3월말 신용불량자가 296만명으로 급증한 것도 주로 가계신용대출 연체로 인한 것이다.
선진 외국에서는 신용이 없으면 자동차 구입시 할부나 카드발급, 일반대출 등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불편을 겪는다. 선진국은 한 개인의 신용을 평가할 때 우리나라처럼 직장의 간판이나 주택 보유 등 외형적인 평가보다는 실제 거래에서 보여준 신뢰지표인 질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신용을 쌓기 위해 당장에 필요 없는 대출을 받아 제때 갚아 거래실적을 만들기도 한다. 이처럼 선진 신용사회에서는 각 개인에 대한 믿음, 그 믿음만큼의 부채를 받을 수 있는 특권인 신용이 사회생활에서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선진국에선 신용의 바탕 위에 이뤄지는 금융거래에 대한 중요성 등을 어릴 때부터 학교나 가정에서 중점적으로 가르친다. 신용 그 자체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귀중한 자산인 셈이다.
글로벌시대, 인터넷 시대에서는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면 사회의 리더 또는 중심으로 나설 수 있다. 네트워크를 내 것으로 만드는 최상의 방법은 신뢰를 얻는 것이다. 지식의 창출과 활용, 그리고 재생산은 모두 사람에 의하여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네트워크 위에서 비로소 이루어 진다.
신용은 믿음이고 약속이며 미래 사회로의 도약을 위한 기반구조(Infrastructure)이다. 도덕적 해이까지 겹친 신용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적당주의, 대충주의를 청산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개인은 건전한 소비생활과 금융 거래를 통해 자신의 신용 관리에 힘쓰고, 금융회사들은 신용평가 기법을 선진국 수준으로 향상시켜 경영의 투명성과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
정부 역시 감독 규제 보다는 시장원리에 맞는 금융지도로 건전한 신용기반을 육성하여 청소년을 비롯한 대 국민 신용교육, 즉 미래사회의 도덕과 기반구축에 적극 나서야 할 시기이다.
최 경 현 한양대 교수 산업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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