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신용불량자 300만 명'이라는 암울한 시대를 맞게 됐다. 카드업계 부실에 따른 금융위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스스로 빚을 갚지 못하는 한계 신용자들이 경제인구의 14%에 이름에 따라 한국경제가 환란 이후 5년 만에 다시금 난파 위기에 몰리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신용불량자 300만 시대
은행연합회는 20일 30만원 이상의 대출이나 카드대금을 3개월 이상 갚지 못한 신용불량자가 처음으로 300만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4월말 현재 개인 신용불량자는 3월보다 12만9,224명(4.37%) 늘어난 308만6,018명으로 사상 최다기록을 경신했다. 신용불량자 증가 폭도 사상 최대로 1월 10만6,074명(4.02%), 2월 9만6,527명(3.52%), 3월 11만8,470명(4.17%)이 늘어 올해 들어서만 45만 명이 증가했다.
더구나 이 같은 증가세는 당분간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가장 많은 신용불량자를 배출하고 있는 카드시장의 여건이 여전히 불안하기 때문이다. 3월에 잠시 주춤하던 카드 연체율이 은행계, 전업계 할 것 없이 4월 들어 다시 급상승세로 돌아선 것이 우선 불길한 징조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경기침체의 여파로 카드 이용실적 자체가 계속 줄고 있는데다 한계선상에 있던 신규 연체자가 속속 생겨나면서 연체율이 다시 오르는 추세"라며 "현 상태라면 하반기에도 추세전환을 기대하기는 힘들다"고 우려했다. 2분기를 카드 연체율의 정점으로 보고 있는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더라도, 앞으로 2개월 동안은 신용불량자 급증세가 계속되리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신용대란, 금융시스템 위기 부르나
신용불량자 300만명은 단순히 '경제활동인구(2,275만명)의 14%가 금융전과자'라는 의미 이상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개인의 빚 연체가 늘어나면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은 부실채권의 누적으로 생존기반이 흔들리고, 금융기관의 건전성 악화는 결국 외환위기 때와 같은 금융시스템의 위기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개인신용 불량사태에 따른 위기징후는 이미 금융권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연체율의 고삐를 잡지 못한 카드사들은 신인도 추락으로 시장에서 자금조달조차 제대로 못하는 지경에 이르며 금융불안의 '뇌관'이 되고 있다. 총 90조에 달하는 채권을 발행해 은행(25조2,000억원), 투신(25조5,000억원), 보험(9조8,000억원), 연기금(8조원), 증권(2조1,000억원) 등 금융권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는 카드사는 각 금융권의 상환압박 속에 정부의 지원(카드채 매입)으로 간신히 유동성 위기를 모면한 상태지만, 지원효력이 끝나는 하반기에 과연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카드사뿐 아니라 최근 2∼3년간 가계대출 장사로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던 은행권에도 부실의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은행들은 올 1·4분기 들어 카드부실 등의 여파로 당기순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97%(1조7,347억원)나 급전직하했다. 신용카드 대출부문에선 전 은행권이 무려 6,67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일부 은행은 당기순이익뿐 아니라 충당금적립전 이익마저 적자로 반전되면서 부실우려를 낳고 있다. 금융계 관계자는 "경기침체와 함께 가계 및 개인의 부실이 확산되면서 금융기관의 건전성마저 위협하는 상황"이라며 "대환대출이나 개인워크아웃 등 단순히 개인구제 차원의 대증요법보다는 경제 전반의 위기 가능성을 감안해 새로운 신용불량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김관명기자 kimkwm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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