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미술을 대표하는 거장 3인의 전시회가 열린다. 23일부터 6월22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초대전을 갖는 게르하르트 리히터(71), 고타르트 그라우브너(73), 이미 크뇌벨(63)은 1960년대 이후 현대 미술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현역 작가들이다.리히터는 세계의 생존 화가 중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명성을 가진 작가. 한국에도 잘 알려진 그는 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그라우브너, 크뇌뵐 역시 세계 50대 화가 명단에 넣어도 손색이 없는 거목들이다. 10여 년의 나이 차가 있지만 이들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모두 구 동독 출신으로 60·70년대 독일 미술의 중심지였던 뒤셀도르프로 이주해 밀접하게 교류하며 작업했다. 독일의 양 체제를 체험한 경력에서 알 수 있듯 아웃사이더로 중심부와 주변부, 경계의 조화와 균형을 탐색했다.
리히터는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무너뜨린 작가다. 회화의 종말이 운위되는 시대에 사진이나 미디어가 표현할 수 없는 회화의 고유성을 재확인시켰다. 그는 사진의 모티프 위에 채색을 가해 사진 혹은 눈이 가진 재현성의 허구를 드러낸다. 미디어의 익명성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그의 그림은 개인과 개인성의 미덕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예술로 평가된다.
크뇌벨은 회화와 조각의 경계에 주목해 추상회화의 마술사라는 별칭을 얻었다. 평면과 사각, 그리고 원색을 바탕으로 한 건축적 풍경화로 요약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은 통칭 '공간 19'라 불리는데 이는 스승인 요셉 보이스가 60년대에 그에게 제공한 방 번호가 19번이었기 때문. "시간은 인간이 찾아냈고, 공간은 신들의 궁전이다" "색채는 상상의 궁전이다"라는 말로 그의 예술론은 집약된다.
그라우브너는 회화의 전통적 주제인 빛과 색채의 미묘함에 주목해 '색채 신체(Farbekoerper)'라는 신조어를 탄생시켰다. 형식 실험에 앞서 회화의 본질을 파고 든다. 모네의 계보를 잇는 것으로 분류되는 그에게 화면은 하나의 생명체다. 미술사가 김정희 서울대 교수는 "각기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긴 하나 이들은 색채의 물질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들의 작품에는 서양 현대 미술사가 다층적으로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02)734-6111
/하종오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