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 피해자들에 의한 잇단 손해배상 소송, 소규모 업체들의 저가 경쟁, 각 주의 소비세 인상…. 미국 메이저 담배회사들을 옥조이고 있는 요인들이다. 특히 필립 모리스, RJ레이놀스, 브라운& 윌리엄슨, 로릴라드 등 미국 빅4 담배회사는 최근 시장점유율 하락으로 투자자들이 등을 돌리면서 설상가상의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올해 1·4분기 수익은 이들 회사들이 위기에 처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필립 모리스는 수익이 전분기에 비해 40%가 줄었고, BJR과 브라운& 윌리엄슨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거의 100%에 이르던 메이저 회사들의 시장점유율도 지난 5년간 90%로 축소됐다. 0.1% 단위로 시장점유율을 체크하는 이들에게 10%는 엄청난 손실이다.
수익률 하락이 시장점유율 하락폭을 크게 넘어서는 것은 담배 소비세 인상 등이 겹쳤기 때문이다. 미국의 21개 주가 재정적자 극복책으로 올린 담배 소비세 인상폭은 평균 53%에 이른다.
과거 메이저 회사들은 손해배상 비용 등 각종 손실을 담뱃값 인상으로 상쇄시켰지만 이젠 어렵게 됐다. 소규모 회사들의 저가 공세 때문이다. 담뱃값을 더 올릴 경우 흡연자들은 더 이상 메이저 회사들의 '고급'담배에 연연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시장점유율의 추가 하락이 확실한 상황에서 메이저 회사들은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는 소규모 회사들은 약 100개에 이른다. 종업원 25명의 소규모 회사인 캐롤리나 토바코의 경우 미국 시장점유율이 1%에 달한다. 소규모 회사들의 한 갑 당 평균 가격은 2.18달러(약 2,600원). 평균 3.41달러에 판매되는 RJ레이놀스의 카멜에 비해 절반 이상 싸다.
메이저 회사들이 수세에 몰리게 된 것은 이들이 흡연자들의 피해를 일괄적으로 배상하기 위해 1998년 포괄청산합의(MSA)를 체결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 MSA는 메이저 회사들이 50개 주정부가 흡연 피해자들에 지출하는 의료비용을 보상하기 위해 25년간 2,460억 달러를 지불하도록 하고 있다.
이후 메이저 회사들은 담뱃값을 올려 보상비용을 상쇄하려 했지만 MSA체제에 가입하지 않은 소규모 회사들이 저가 공세를 펼치는 바람에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 미국 담배회사들은 MSA체제 가입을 통한 배상이나 각 주정부와의 개별적인 배상계약 중에서 방법을 임의로 선택할 수 있다. 소규모 회사들은 주정부의 보상계약 관리가 허술하다는 점을 이용, MSA체제 밖에서 배상 부담을 줄이면서 저가 공세를 펼치고 있다.
MSA체제가 담배 광고를 제한하기로 한 것도 메이저 회사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다. 라디오, TV, 전광판, 잡지를 통한 담배 광고가 금지되면서 저가 담배의 경쟁력은 더 높아졌다.
여기에 흡연 피해자들의 개인적 소송이 담배회사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MSA 체결 이후 메이저 회사들은 9번의 개인소송에서 패했다. 연방법원은 가장 최근의 소송에서 메이저 회사들에게 징벌적 배상금 2,800만 달러를 공동으로 물도록 판결했다. 니코틴 양이 적어 건강피해가 덜하다는 '라이트'담배 광고가 흡연자를 기만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이에 대한 소송도 잇따를 전망이다.
중국산 가짜 브랜드 밀수품 등 밀수 담배는 메이저 회사들을 더욱 울상짓게 만들고 있다. 싼 값으로 유통되는 가짜 밀수 담배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메이저 회사들이다. 필립 모리스는 가짜 브랜드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5%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처럼 메이저 회사들이 사면초가에 빠지자 신용평가사들은 이 회사들의 신용등급을 사정없이 낮춰 버렸다. 이 바람에 불황을 겪는 IT분야 등에서 빠져 나와 연초업계에 대한 투자를 고려하던 자금이 발길을 돌리고 있다.
/배연해기자 seapower@hk.co.kr
■금연지대 확산도 위기한몫
미 담배 메이저 회사들의 위기는 확산되고 있는 대도시의 흡연금지 정책이 한몫하고 있다.
미국 뉴욕은 혐연(嫌煙)의 상징적인 도시다.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은 흡연자들의 빗발치는 비난에도 아랑곳 않고 도시내 모든 술집과 레스토랑내 흡연을 금지시켰는가 하면 엄청난 세금 부과로 담뱃값을 부쩍 올려놓았다. 카멜 한 갑이 7.5 달러(약 1만원)에 이르는 뉴욕에서는 "담배를 사러 시 외곽으로 쇼핑간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올 정도다. 심지어 애연가를 위해 음식점에서 담배향이 첨가된 메뉴를 개발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술취한 흡연자들이 술집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며 떠드는 소음으로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매상 격감에 시달리는 음식점 주인들의 원성도 자자하지만 이 같은 뉴욕의 금연정책은 미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보스턴도 최근 시내 술집과 레스토랑에서의 흡연을 금지시켰다. 시카고는 뉴욕과 비슷한 수준의 금연 정책을 탐색중이며 플로리다주는 7월1일부터 금연법이 발효된다. 금연 운동가들은 "금연구역 확산이 담배세 인상과 맞물려 담배 소비를 현격하게 줄일 것"이라며 "결국 담배에 대한 사회적 관습 자체가 변화할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금연지대 확산은 비단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아일랜드 정부는 국내 모든 술집 및 레스토랑은 물론 일반 작업장에서의 금연 강제 법안을 추진중이고, 일본 도쿄의 중심지역인 치요다(千代田)구는 거리 청결과 보행중 담뱃불에 옷을 태우는 사고를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지난해 10월부터 '길거리 흡연 금지 법안'을 발효시켜 위반시 최대 2만엔(약 20만원)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서울 성북구가 동선동 하나로거리(성신여대 정문∼미아리 고개)를 금연거리로 정해 11월께부터 강제 금연을 시행할 계획이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인류 하루에 150억개비 피운다
전세계 흡연량은 20세기 초 담배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한 이래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담배 소비량은 1900년 20억 개비였지만 1940년 1조 개비를 돌파한 뒤 90년 5조4,190억 개비를 기록했다. 이후 증가율이 크게 둔화되기 했지만 절대량은 계속 늘어 2000년 소비량은 5조5,000억 개비에 이르렀다. 인류 1인당 1,000개비에 육박하는 양이다. 인류가 하루에 피우는 담배는 150억 개비에 달한다.
담배 소비량 증가는 인구증가와 비례한다. 2030년이면 인구가 80억 명에 이르러 흡연인구도 증가할 전망이다. 선진국의 흡연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개발도상국이 계속적인 증가세를 보여 절대적인 담배 소비량은 늘고 있다. 여성 흡연자의 증가속도가 남성 금연자의 증가속도를 능가하는 것도 전체적인 담배 소비량을 끌어 올리는 이유로 지적된다.
지역별 담배 소비량(98년 기준)은 극동과 호주를 포함한 아시아가 연간 2조7,150억 개비에 달해 1위를 기록했다. 2위는 미주대륙으로 7,450억 개비였으며 3위는 6,310억 개비를 태우는 동유럽과 구소련권이었다. 서유럽의 연간 소비량은 6,060억 개비였다.
국가별 소비량은 중국이 1조6,430억 개비로 전세계 소비량의 30%를 차지해 단연 최고였다. 그 다음은 미국(4,510억 개비) 일본(3,280억 개비) 러시아(2,580억 개비) 인도네시아(2,150억 개비) 등의 순이다. 한국은 15세 이상 남성의 경우 흡연율이 58.7%(2001년 기준)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반면 여성은 5.6%로 회원국 중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흡연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하는 중국인은 연간 75만 명으로 추산된다. 중국은 국유 담배회사가 각 지방정부의 주요 세원이라 금연운동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중국 최대의 담배회사를 갖고 있는 윈난(雲南)성 홍타(紅塔)그룹은 윈난성 재정수입의 60∼70%를 세금으로 내고 있다.
/배연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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