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괜한 소리를 했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다 가끔 눈물을 찔끔거린다고 했으니 말이다. 놀라는 건지 놀리는 건지 잠시 분위기가 묘해졌다. 그러나 뭘 갖고 그랬는지 하더니 다들 고개를 끄덕거린다. 외국인 노동자가 가족을 만나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어지간히는 본 모양이었다. 말은 안 하지만 그 중에 몇은 나와 비슷했던 눈치다. 사실 난 그걸 몇 번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매번 어떻게 그리 사정이 한결같은지. 돈도 돈이지만, 몸이 상하고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소리가 빠질 때가 없다. 근로자로 올 정도니 젊은 축이고 건강한 편이었을 터인데도 말이다. 오죽하면 촬영 중에 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경우도 있었을까.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노동환경이 좋을까, 산재니 보험이니 하는 제도가 충실할까, 건강을 상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객관적인 자료가 있나 싶어 인권위원회의 최근 보고서를 뒤져보았다. 생각보다 건강상태가 더 나쁘다. 작년 말에 1,00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를 조사한 결과 3명에 한명 꼴로 사고성 재해를 당했고, 47.3%가 병으로 직장을 사흘 이상 쉰 경험이 있었다. 주로 3D 업종이라지만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 사고도 사고지만, 처리는 더 한심하다. 산재보험으로 처리한 건 12.7%에 지나지 않고, 전액 개인부담도 27.2%나 된다.
꼭 텔레비전의 인기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라 이제 이들의 건강문제에 관심을 좀 가졌으면 한다. 사정이 뻔한 이들에게 병과 사고가 무얼 의미하는지 모르지 않는다면, 문제를 혼자 해결하라고 떠넘기지 않는 것이 문명 사회의 도리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도리'라고 하기엔 뭣한 국제사회의 '규범'이기 때문이다. 국제노동기구는 80년 전에 이미 근로자의 재해보상에 대해서는 내·외국인을 동등하게 대우하라는 협약을 체결하였고, 우리나라도 진작 비준했다. 이를 지키자면 산재보상에 관한 한 국적과 인종에 따른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올 4월부터는 'UN 이주노동자 권리협약'이 발효됐다. 아직 비준한 나라가 아주 적고 우리나라도 적극적이지 않지만, 이 협약에 명시된 내용은 두고두고 새로운 국제규범이 될 것이다. 협약은 불법체류를 포함한 모든 이주노동자가 사회보장과 긴급의료에 대한 권리를 고용국가의 국민과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건강은 피부색과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소중한 기본권이다. 더구나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 경제의 험한 틈을 모두 몸으로 메우고 있지 않은가. 이들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윤리이자 경제다. 그리고 진정한 세계화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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