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섬세하고 복잡한 마음은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정신과의사들이 내놓는 여자의 우울증 발병률은 남자보다 2배나 높다. 2.5배까지 잡는 의사도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 여성의 10∼25%가 일생동안 최소 한번은 우울증을 경험하며, 여자 인구의 5∼9%(남자는 2∼3%)가 우울증 환자라고 알려져 있다. 우울증은 21세기 인류를 괴롭히는 10대 질병 중 하나. 세계보건기구(WHO)는 2020년엔 우울증이 인류를 괴롭힐 세계 2위의 질병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울증의 남녀 차는 여자의 임신 가능 기간인 20∼50세에 특히 크게 벌어진다. 여자의 엄살 VS 남자의 과묵?몇몇 학자들은 혹시 여자가 우울증에 잘 걸리는 이유가 조그만 증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자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라는 가정 아래 우울증의 진단 기준을 훨씬 엄격하게 해 남녀차를 비교했다. 이 결과 기준이 엄격하면 할수록 남녀 차는 더 벌어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결코 여자의 엄살이 우울증 환자 수를 늘린 것이 아니다. 또 다른 가설은 혹시 평소 감정을 드러내는데 익숙하지 않은 남자들이 우울증을 화를 내거나 알코올 남용 혹은 마약중독 같은 다른 형태의 신체증상으로 나타내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알코올 남용과 우울증을 동시에 갖고 있는 남녀를 각각 비교해 본 결과 우울증의 또 다른 형태로 남자들이 화를 표출하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우울증은 생활환경이 더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기혼녀가 미혼녀보다 훨씬 우울증 발생 비율이 높은 것도 한 증거다.
남자와 다른 극적인 삶
의학자들은 여자의 사회적 역할, 즉 임신과 출산,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여자의 우울증 발병률을 높인다고 보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스트레스에 다르게 반응한다. 연세대의대 정신과 전우택교수는 "여자는 관계중심적인 대인관계, 남자는 기능중심적인 대인관계를 맺는다"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여자의 특성은 여자를 더 우울증에 취약하게 만든다"고 진단했다. 타인과의 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여길 때 여자는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갱년기 무렵 나타나는 주부우울증도 역시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증상이다.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하는 남편과 비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스트레스를 겪는 것이다.
우리나라 여자들만의 특성도 있다.자신보다 타인을 위한 삶을 살아온 한국의 전통 여성들은 평소 남편 자녀 시댁 식구들을 위해 자신이 희생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산다. 어느날 자녀가 자신의 뜻대로 반응하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이로 인한 공허감은 우울증이라는 신체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다.
여자의 긴 수명은 우울증 발생의 남녀 격차를 더욱더 벌어지게 하는 또다른 요인이다. 7∼10년 동안 배우자 없이 홀로 사는 여자들은 확실히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뿌리 깊은 남아선호사상도 딸인 여자들을 우울증에 빠뜨린다. 전교수는 "어린시절 엄마로부터 심리적으로 버림받고, 소홀히 여겨졌다는 느낌은 우울증 발병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생물학적 차이 / 여성호르몬?
분만 후 혹은 폐경을 전후해 여성호르몬 에스트로겐 분비는 급격하게 하락한다.에스트로겐 감소는 뇌신경전달물질 체계를 교란시켜 우울증에 걸리기 쉽게 만든다. 고려대의대 정신과 이민수 교수는 "산후우울증이 전체 우울증 환자의 10%에 이를 정도"라고 말한다.
갑상선 호르몬도 인간 감정에 관여하는 호르몬. 여자는 남자보다 훨씬 더 잘 각종 갑상선관련 질환에 걸리며, 이 때문에 우울증에도 더 취약하다.
뇌의 발달도 영향을 미친다. 전교수는 "남자의 뇌는 좌반구 위주로 발달, 논리적 분석적 특성이 뛰어나며, 여자는 좌우반구가 동시에 발달해 통합적 인지 능력에서 앞선다"고 말한다. 전체적 조화가 맞지 않는다고 느낄 경우 여자는 우울증을 호소할 수 밖에 없다.
엄마의 우울증, 딸에게 나쁜 영향
여자의 우울증은 가족 관계를 파괴하고 사회생활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만든다. 다음세대 양육에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전 교수는 "정신 분열증 엄마가 키운 아이보다 우울증을 겪는 엄마가 키운 아이가 훨씬 더 성장발달이 느리다"고 말한다. 감정을 주고 받는 대인관계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우울증은 치료하지 않고 방치했을 경우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는 우울증 환자의 자살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41배나 높다고 보고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여자의 자살시도률은 남자보다 4배나 많았다. 그러나 자살성공률은 남자가 오히려 여자보다 4배나 높았다. 시도는 하나, 자살에까지 감히 이르지 못하는 것이 여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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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우울증 환자를 많이 진료해 온 고려대의대 정신과 이민수교수. 그는 "우울증 만큼 가까운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필요로 하는 병도 드물다" 고 말한다. 아내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남편이다. 풍부한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이교수가 우울증 아내를 둔 남편들에게 전하는 말이다.
꼃 아내의 감정상태를 꾸준히 관찰하라. '내 인생은 끝났다'같은 절망적인 말을 하는지 잘 살펴라. 갑자기 아내의 말과 행동이 느려졌을 때 나이가 들어 퍼졌다고 그냥 넘기지 말라. 힘들겠다 판단되면 아내 손을 잡고 전문의를 찾아가라.
1. 고부갈등은 우울증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 시댁 식구에게 잘해주라고 아내에게 요구하고 싶다면, 동시에 아내의 친정 식구들을 세심히 배려하라. 받기 전에 주어라. 세상이 달라졌다.
2. 아내를 부엌데기로 여기지 말라. 전업주부는 전문직이다. 남편, 당신의 직업처럼 전문 영역임을 인정하고 존중하라. 미미한 사회적 지위로 인한 좌절감, 실망감이 우울증의 요인이 될 수 있다.
3. 직장 다니는 아내도 당신과 똑같은 인간이다. 아내의 헌신을 원한다면, 당신도 집안 일에 기여하라. 아내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또 과도한 책임감에서 허우적거리게 하지 말자.
4.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서 나온다. 1주에 한번은 아내와 등산이나 산책을 하며 함께 땀을 빼라. 아내와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자. 아내에게 강요하지는 말자. 조급한 강요는 아내를 더 고통에 빠뜨릴 수 있다.
■우울증은 치료해야 할 病
우울하고 슬픈 느낌이 든다고 모두 우울증은 아니다.
의학적인 의미에서의 우울증은 슬프거나 울적한 느낌이 최소 2주동안 거의 매일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기분장애로서의 우울한 느낌과는 구분된다.
우울증은 의지가 박약해 발생하는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의학적으로 분명히 치료해야 할 병이며, 약물치료를 통해 70% 이상 효과를 낼 수 있다.
우울증은 뇌속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등의 화학적 불균형으로 발생하는데, 항우울제는 세로토닌의 흡수를 억제, 몸 속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상태를 조절해주게 된다. 대표적인 항우울제는 GSK의 세로자트, 릴리의 프로작, 화이자의 졸로푸트 등을 꼽을 수 있다. 개개인의 특성에 따라 의사의 처방을 받으면 된다.
항우울제는 적어도 3∼4주는 복용해야 효과를 볼 수 있다. 먹어서 금방 좋아지는 약이 아니라는 것은 수면제나 신경안정제 같은 습관성이 없다는 뜻이다. 전교수는 "우울증은 재발율이 높아 꾸준히 복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나 미국정신과협회(APA)는 적어도 4∼6개월이상은 복용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이외에도 정신치료를 병행하면 좋다. 환자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우울증을 일으키는 요인을 밝혀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게 하는 치료법이다. 분노나 증오심을 풀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를 갖도록 연습시키는 것이다.
평소 생활습관도 중요하다. 정신과 의사들은 ▲단음식이나 카페인을 삼가라 ▲육류를 적게 섭취하라 ▲햇볕을 하루 30분이상 쬐라 ▲적당한 운동을 하라 ▲물을 하루 8잔 이상 마셔라 ▲생선을 많이 섭취하라고 권한다.
■ 우울증 자가진단 체크 리스트
(4∼5개 증상 최소 2주이상 나타나면 우울증)
계속되는 우울, 불안, 혹은 공허감
신경질이나 잦은 짜증
식욕이나 성욕 저하
세상 모든 일에 의욕을 상실
과다한 수면 혹은 불면
쉽게 피로하고 몸이 처지는 느낌
집중력 및 주의력 감퇴
심한 건망증
염세적 사고
우물쭈물하고 우유부단한 의사결정
자살시도 또는 자살에 대한 생각
죄책감 혹은 무력감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느낌
미국 국립정신보건원(NIMH)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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