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어머니!놀라셨죠. 저 큰 딸, 종찬이 엄마예요. 이렇게 편지라도 쓰지 않으면 새 어머니와 정말 멀어질까 겁이 나 어렵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새 어머니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납니다. 분홍색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집으로 들어오시는 어머니를 보고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않았어요. 돌아가신 엄마와 너무나 비슷하셨기 때문이죠. 전 그 때 벌컥 화를 내며 나가버렸죠. 당뇨병으로 몇 년을 고생만하시다 돌아가신 제 엄마 생각이 났거든요. "넌 결혼했으니 내 외로움을 이해할 줄 알았다"는 아버지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후 친정에는 발을 뚝 끊어버렸고 아버지와 새어머니께서 제게 가까이 오려 해도 무조건 싫다고만 했어요.
제 생일날 직접 미역국을 끓여 오신 거 생각나세요? 며칠 전부터 저녁 먹으러 오라고 전화하셨지만 제가 냉정하게 대하자 그래도 생일인데 섭섭하다며 전화도 없이 오셨죠. 전 "누가 언제 미역국 끓여 달라고 했어요? 필요 없으니 가져가 아버지와 드세요"라며 고개를 돌렸죠.
그 때 전 보았습니다. 새 어머니의 눈물을. "내가 그렇게 밉니. 나 때문에 아버지와 등 돌리고 살진 말아라. 네가 원한다면 아버지와 그만 둘 수 있다"며 흘리는 눈물에 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그 때는 왜 그래야만 했는지. 아마 새 어머니에 대한 원망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게 가시방석 같다며 새 어머니가 자꾸 마른다는 아버지 말씀을 듣고 몇 번 친정에 간 적도 있었습니다. 저한테 그렇게까지 미안해 하실 필요가 없는데 마음고생하시는 게 죄송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새 어머니가 오신 지 3년 동안 따스한 눈길 한번 드리지 않고 쌀쌀하게만 대했던 제 자신이 부끄러워 선뜻 새 어머니께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새 어머니! 저 때문에 마음 아파하지 마세요. 이젠 조금씩 제 마음의 문을 열게요. 그러니 편히 지내세요. 지난날 저의 철없던 행동과 말들은 다 흘려버리세요.
마음의 문이 열리면 새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떠나 마음 속에 응어리진 것을 훌훌 다 털어버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돌아가신 엄마와 해 보지 못했던 일들을 새 어머니와 같이 해보렵니다. 아직은 말이 쉽게 나오지 않지만 어머니라 부를 수 있도록 노력도 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이렇게 편지를 쓰고 나니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새 어머니! 아버지와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임형신(36)·인천 연수구 옥현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