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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인어 아가씨' 작가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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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인어 아가씨' 작가라면

입력
2003.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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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임성한씨 댁이지요?” “아니요, 갈비집인데요.”두 달 전의 일이다. MBC 일일연속극 ‘인어아가씨’의 황당한 이야기 전개, 저속한 대사, 질질 끌기 등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종영을 촉구하는 사이버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더 나아가 ‘작가 임성한의 방송계 퇴출’을 궁극적 목표로 삼았다.

‘보고 또 보고’(1998) ‘온달왕자들’(2000) 등 전작을 포함해 “자극적이다 못해 패륜에 가까운 내용과 특정 직업이나 계층을 비하하는 대사 남발, 노골적 간접광고 등의 폐해가 도를 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시청률 잡는 데 귀신 같은 재주를 보여 방송국에는 보배나 다름없는 인기 작가에게 펜을 놓으라니!

작가의 반응이 궁금했다. 어떤 비난에도 꿋꿋이 버티면서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는 절대 인터뷰하지 않는 작가로 도 유명하지만 만남을 시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MBC 홍보실이 일러준 전화번호는 갈비집 번호였고, 담당 PD에게 연락처를 물어도 “작가가 절대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했다”고 거절했다. 대본도 다른 사람 이메일로 보낸다고 했다. 그 후로도 온갖 수단을 동원해 봤지만 허사였다.

42세의 미혼 여성, 전직 초등학교 교사, “TV 드라마가 하도 재미 없어 나도 저 정도는 쓰겠다 싶어서” 드라마 작가로 나서 단막극 3편과 연속극 3편 집필. 그에 대해 알려진 전부다.

그는 왜 외부 접촉을 그토록 꺼릴까. 인터넷에서 찾은 유일한 인터뷰 기사(물론 사진은 없다)에 따르면 “작가와 주방장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아니래요. 근사한 작품만 내놓으면 할 일을 다 한 셈이잖아요”라고 말했다. 정말 그랬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왜? 보고 싶은 사람만 보면 되는 영화나 연극 작가, 혹은 소설가라면 그런 변명이 통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공공의 자산인 전파를 이용하는 ‘특혜’를 누리는 드라마 작가는 다르다. 숱한 사람들의 이유 있는 항변에 귀 기울이고, 나름의 변이 있다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게 전파의 주인인 시청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더구나 그가 내놓은 작품들은 그리 근사하진 않다. 시청률 1위인데 무슨 소리냐고? 막 가자는 게 아니라면, 높은 시청률은 귀 틀어막고 내 멋대로 쓰겠다는 독선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싫으면 안보면 그만 아니냐고? TV 3사의 방송시장 독과점이 심각한 상황에서, 그것도 온 가족이 TV 앞에 모이는 황금시간대를 주 5회 30분씩 배정 받은 작가가 할 소리가 아니다.

내가 만약 “근사한 작품만 내놓으면 할 일 다했다”고 믿는 작가라면, 소신(?)을 지키기 위해 드라마 작가를 그만 두고 소설가로 나서겠다. 드라마의 매력을 놓칠 수 없다면, 화려한 시청률로만은 다 가릴 수 없는 시청자들의 힐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희정 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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