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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알찬 밤처럼 세상에 나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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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알찬 밤처럼 세상에 나오렴

입력
2003.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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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을 기다리는 율아. 네가 엄마, 아빠의 생애 최대의 선물이 된 지도 이제 18주가 돼 가는구나. 윤기 나고 토실토실한 알밤 세 알을 산 속에서 주웠다는 네 할머니의 태몽 덕에 넌 벌써 율(栗)이란 이름까지 갖게 됐단다.어느 새 너를 닮은 새파란 나무들과 싱그러운 공기가 가득한 5월이다. 1년 열두 달 가운데 가족의 사랑과 따스함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달이야. 올해 서른인 아빠가 첫 아이를 갖는 느낌을 너는 알겠니?

우리 율이가 처음으로 느끼는 5월은 어떤지 궁금하구나. 지금 네가 있는 방이 자꾸만 좁아진다고 불평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렇지 않아도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엄마 배를 보며 아빤 생명의 소중함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 새삼 느끼고 있단다.

얼마 전 이라크라는 나라와 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시무시한 전쟁을 했었거든. 거기서 이유도 없이 불쌍하게 죽어가는 해맑은 아이들을 보면서 아빠와 엄만 정말 슬펐단다. 뉴스를 보면서 아빠, 엄만 보이는 것처럼 항상 밝지만은 않은 세상에 태어날 율이에게 무엇보다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한없이 약한 정의롭고 현명한 사람이 되길 기도했단다. 율이는 아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지?

독일 철학자 칸트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라'(Fiat justitia, ruat caelum)고 말했다지만, 아빤 하늘이 무너져도 지켜야 할 정의가 과연 무엇일까를 여전히 고민하고 있단다. 율아! 아빠는 율이가 정의로운 사람이 되길 바란다. 그러려면 무엇이 정의이고 진실인지 항상 고민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율이가 돼야겠지. 그것이 어쩜 더욱 중요한 일인지도 모르겠구나.

율아! 엄마의 따스한 배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너를 생각하면 아빠는 힘든 일을 하다가도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고 없던 힘도 절로 난단다. 이게 사랑의 힘이라는 거겠지? 네가 태어나고 앞으로 할머니, 아빠, 엄마 이렇게 넷이서 올망졸망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이 우리 가족에게 펼쳐질 거야. 때론 기쁜 일도 때론 슬픈 일도 있겠지만 사랑의 힘으로 우리 거뜬히 극복해 가자꾸나.

우주만큼 사랑하는 율아! 이름처럼 올곧은 신념과 원칙으로 율(律)을 지키고,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한결같은 강함으로 항상 스스로를 율(慄)하며,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으로 율(率)한 그리고 알차고 맛난 율(栗)같은 사람이 되길 아빤 항상 기도한다. 토실토실 밤이 터져 나오는 가을에 보자. 사랑한다, 율.

/김기호(30)·서울 관악구 신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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