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효과는 역시 대단했다. 서울 119 구조·구급대가 월드컵 개최기간인 지난해 6월 자살신고를 받고 출동한 건수는 165건으로 5월보다 24건, 7월보다 38건 적었다. 2001년 6월과 비교하면 66건이나 감소했다. 전국적인 통계는 아니지만, 월드컵이 자살 예방에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 것은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할 것 같다. 지난해 전체로도 자살자들 때문에 출동한 사례가 전년보다 16% 줄어들었다니 월드컵의 약효가 오래 갔다고나 할까. 단군 이래 가장 행복했던 시기, 전국민이 신바람을 냈던 시기라는 말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2001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19명이 자살을 하고 있으며 자살률도 10만 명당 15.5명으로 매우 높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0개 가입국 중 5위에 해당된다. 국민 전체의 사인 중에서는 여덟번째로 집계됐지만, 10∼19세 사망자의 경우는 교통사고 암에 이어 세 번째 사인이다. 특히 청소년과 20대 여성, 30대 주부 자살의 비율이 여전히 높아 이들 계층에 대한 우리 사회의 억압구조가 큰 문제라는 점을 다시 알게 된다. 월드컵효과로 자살률은 다소 낮아졌겠지만, 전체적인 경향에 큰 변화는 없었을 것이다.
■ 자살사건에서 두드러지는 경향은 투신자살이 증가하는 점이다. 고층생활자들이 늘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어제 서울행정법원이 사건발생 20개월 만에 공무상 재해로 판결한 교사도 투신자살한 사람이었다. 그는 교장의 과도한 업무요구와 모욕적인 언사를 못 견뎌 아파트에서 몸을 던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현재 자신이 처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행하는 행위다. 그런 점에서 몸을 던지는 것은 자살이라는 행동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볼 수도 있다. 홍콩배우 장궈룽(張國榮)도 한 달 전 호텔 24층에서 투신해 다른 공간으로 가 버렸다.
■ 장궈룽의 유작이 된 영화의 제목은 신기하게도 '이도공간(異度空間)'이다. 2002 부천 판타스틱영화제에서 선보인 바 있는 '이도공간'에서는 죽은 사람의 혼령을 보는 여인을 치료하다 사랑하게 되는 정신과의사가 자신도 혼령의 공포에 빠져 빌딩에서 투신자살한다. 실제 자살과 너무 흡사해 더 주목받고 있는 작품이다. 장궈룽이 자살하자 국내 팬들은 사스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홍콩에 찾아가기도 했었다. 이달 말 영화 개봉에 맞춰 장궈룽 추모제도 열린다는데, 청소년들이 영화를 보고 역으로 자살충동을 극복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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