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었습니다. 광릉 숲에 있는 연구실 일을 조금 늦게 마치고, 퇴근길 정체를 헤치며 서울 도심의 한 건물에 가서 한 두 시간 정도 책을 보고 나니 밤 11시가 훌쩍 넘었더군요. 하루 종일 바쁘게 종종거리며 지낸데다 시간이 없어 차에서 김밥 한 줄로 때우고 난 터라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습니다.육중하게만 느껴지는 그 건물의 유리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어디에선가 흘러오는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바로 아까시나무 꽃 향기였습니다. 다른 잡다한 일에 시야를 빼앗기지 않는 밤에, 달콤하면서도 청량한 내음으로 전하는 그 꽃의 위로가 너무 고마워 하마터면 울컥 눈물을 쏟을 뻔 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많은 사람들이 미워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하는 애증어린 나무이지만 적어도 저는 그 순간 '한 나무가 가진 미덕이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왜 아카시아를 아까시나무라고 하는지 의아해 할 터이니 우선 이것부터 설명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시아(acacia)'라는 나무는 지금 꽃이 한창인 나무가 아니라 열대지방에 관목상으로 자라는 다른 나무입니다. 아까시나무는 학명에서 '가짜 아카시아'라는 뜻인데 우리나라로 들어와 진짜 아카시아로 되어 버린 것이지요.
아카시아라는 이름이 주는 세련되면서도 친숙한 느낌으로 이 이름을 버리기는 못내 아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틀린 것은 틀린 것입니다. 본래 이 이름의 주인은 따로 있으니 우리는 아까시나무로 해야 맞습니다. 식물 이름은, 특히 세계가 공통으로 쓰는 라틴어 학명은 마음대로 바꿀 수 없습니다. 식물이름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국제식물명명규약'이란 것이 있어 선취권을 엄격하게 따져 이름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사랑 받기보다는 더 많은 미움 받는 아까시나무. 하지만 이 나무가 살아가는 방법을 엿보며 조금씩 이해하면 오히려 미안한 것은 바로 우리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눈총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좋은 우리 땅을 버린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까시나무는 일제시대 때 산을 수탈하느라 소나무를 마구 베는 바람에 산사태가 우려되는 땅에 응급복구용으로 들여와 심은 것 입니다. 오히려 해방이 되고도 한동안 연료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빨리 자랄 땔감으로 쓰도록 식수를 권장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콩과 식물인 이 나무는 공중의 질소를 고정해 땅을 비옥하게 할 수도 있으니 이 나무 입장에서는 억울하지요. 그저 시기를 잘못 만났을 뿐입니다.
아까시나무가 있는 숲은 나쁜 숲이라는 얘기도 그렇습니다. 좋은 숲과 나쁜 숲을 딱 잘라 구분하는 것도 어렵지만 일단 우리나라 고유의 나무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숲을 좋은 숲이라고 말한다면 아까시나무는 이 숲에 들어가 살 수 없습니다. 이 나무는 자라는데 햇볕이 꼭 필요하기 때문에 그늘 속에서 견디면 군락을 만들어나가지는 못합니다. 언젠가 숲의 천이(遷移)를 설명하면서 이 원리를 설명했지요. 그러니 나쁜 숲이라는 것도 역시 우리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 아까시나무 탓은 아닌 듯합니다.
다음 주엔 아까시나무의 무서운 가시와 더없이 달콤한 꿀 이야기를 좀 더 할까 합니다. 그 전에 문밖으로 나가서 아까시나무 향기와 조우해 5월의 기운을 한껏 느껴보기를 권해 드립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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