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리랑'을 집필하기 위해 1990년 취재 차 처음 김제에 왔다. 그때 이곳에서 만난 문인들은 '그 같은 구상이 소설로 제대로 옮겨질 수 있겠느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 '아리랑'이 한국일보에 원고지 2만 매 분량으로 연재되고 전 12권의 단행본으로 나왔으며, 소설의 발원지가 된 이곳에 이렇게 '아리랑문학관'이 세워졌다."16일 문을 연 '아리랑문학관'에서 만난 소설가 조정래(60)씨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이곳이 다음 세대가 민족의 고통과 상처를 기억하고 되새기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소설 '아리랑'은 '징게맹갱 외에밋들'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김제 만경 너른 평야를 가리키는 토박이말이다. 조정래씨는 이곳을 "막히는 것 하나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고 있다"고 적었다.
아리랑문학관은 식민지 시대 만주와 연해주, 하와이 등으로 떠돌아야 했던 한민족의 수난과 투쟁사를 그린 역사소설 '아리랑'(해냄 발행) 출간 10주년을 맞아 소설의 주요 무대가 된 전북 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에서 개관했다. 개관식에는 박태준 전 국무총리와 이태복 전 보건복지부 장관, 진형준 한국문학번역원장, 소설가 김영현 김훈 전경린 최인석 한창훈씨, 시인 이문재 이산하씨, 평론가 임헌영 황광수씨, 출판인 강형철 문학동네 사장과 임성규 문이당 사장 등이 참석했다. 지상 2층 규모의 문학관 1층에는 김제의 전경과 작품에서 다룬 시대를 정리한 영상자료와 원고가 전시됐다. 2층에는 취재수첩과 작품구성 노트, 필기구와 작품 사진 등이 전시됐으며, 문인들의 집필을 돕기 위한 창작 스튜디오도 함께 마련됐다. 1층 중앙에 쌓아 둔 육필 원고 2만 매는 그 자체로 치열한 작가 정신이다. 조정래씨는 "일제 시대에 죽어간 민중이 400만 명에 이르는데, '아리랑'의 원고 분량은 2만 매 뿐"이라며 "한 글자 한 글자에 민족의 아픔을 새기기로 하고 전력을 기울였다. 내 모든 능력을 다 바쳤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가 환갑을 맞은 해여서 아리랑문학관 설립의 의미가 각별하다"며 "민족에 대한 슬픈 애정은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의 바람은 '계속해서 새롭게 읽혀지는 역사의 진실이다'. "내일을 알기 위해 어제를 배우는 것이 아닌가"라며 "소설이 담고 있는 역사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근 출간된 프랑스어판 '아리랑'의 번역자인 조르주 지겔마이어와 드니 프리앙 아르마탕 출판사 사장도 참석했다. 파리 7대학에서 일제 강점기 침략사를 강의한 교수 출신의 지겔마이어씨는 "일본이 한국에 의해 문명화했다는 내용을 강의한 적이 있는데 진실을 받아들이는 아픔을 감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일본 학생들은 더 이상 강의에 들어오지 않았다"며 "나는 '아리랑' 번역을 통해 한국의 올바른 역사를 더욱 잘 이해시키고 알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말했다. 한국에 깊은 관심을 가진 그는 한국인 아내인 변정원씨의 내조에 힘입어 7년 만에 작품을 완역했다. 그는 "조정래씨의 작품은 아시아 문화의 고유한 측면 뿐 아니라 전세계에 재인식돼야 할 보편적 인간성 측면에서도 큰 가치를 지닌다. 전세계 지성인들에게 널리 읽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제=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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