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5·18을 맞이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진다. 그 답답함은 개혁과 진보를 표방한 지식인이나 정치인들마저 호남 지역주의를 다른 지역의 지역주의와 똑같이 양비론으로 다루는 발언에 접할 때면 개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보통사람들은 그럴 수 있다지만, 어찌 개혁과 진보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그럴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나는 5·18에 대한 미화(美化)는 물론 거창한 가치 부여에 단호히 반대한다. 내가 아는 5·18항쟁은 인간은 개, 돼지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자 한 것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개 돼지가 아니라면 광주 시민들도 똑같이 개 돼지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광주 시민들은 당시 신군부에 의해 개 돼지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인간의 언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무자비한 '인간 사냥'이 자행되었다. 신군부와 그들이 세운 5공은 그 학살을 은폐하고 왜곡했다. 훗날 민주화가 이루어져 5·18의 진상에 대한 정보에 자유롭게 접할 수 있게 되었을 땐 '광주'는 이미 역사가 되고 말았다. 다수 한국인들은 무고한 동족에 대한 학살극을 방관했던 것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느낄 기회를 상실했으며, 이는 광주학살과 5공을 분리해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18 항쟁은 광주에서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전남 전역에 걸쳐 일어났으며, '광주'가 '호남'과 동일시되는 데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호남인들은 광주학살과 5공을 분리해 생각할 수가 없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광주 학살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 그 깊은 상처를 한(恨)으로 가라앉히면서 겨우 투표를 통해 표출했던 호남인들이 온전히 이해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해심이 좀 있다는 사람들조차 나중엔 지겹다고 짜증을 내지 않았던가.
1971년 대선에서 강한 지역주의 투표 성향을 보인 건 영남이었지 호남이 아니었다. 영남은 김대중에게 45만표를 준 반면 박정희에겐 그 5배나 되는 222만표를 주었다. 반면 호남은 김대중에게 준 140만표의 반에 가까운 77만표를 박정희에게 주었다.
87년 대선 이후 선거 때마다 호남인들이 김대중과 그의 정당에 90%를 넘나드는 몰표를 준 걸 꾸짖는 사람들은 왜 그런 변화가 생기게 되었는지 그걸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한 꾸짖음에 따르자면, 호남인들이 5공을 계승했거나 그 주체세력을 수용한 정당에게도 많은 표를 주어야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는 것인데, 이는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게 호남인들의 생각이다.
문제의 핵심은 호남 몰표가 아니라 광주학살과 5공의 분리주의다. 5공에서 맹활약을 했던 인사들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그 어떤 반성과 참회의 말도 하지 않은 채 지금 대통령직까지 염두에 둔 정치적 행보를 보이고 있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 들여지고 있는 현실이 논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많은 한국인들이 광주학살과 5공의 분리주의에 감염돼 있으니, 이게 바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비극의 본질이다. 5·18의 진실은 '경제'로 기름기가 끼어 무뎌진 그들의 양심을 바늘로 찔러 아프게 만들어야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만, 누가 무슨 수로 그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는 사람들이나마 과거를 망각하는 '역사의 빈혈증'을 치유해주길 바랄 뿐이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