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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묻혀진 "5·18 수용소" 지옥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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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묻혀진 "5·18 수용소" 지옥의 날들

입력
2003.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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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로 5·18 민중항쟁이 23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녹음이 짙어가는 이 5월에도 여전히 한총련 수배자 가족들의 눈물이 보이고 노동자, 농민들의 절규가 들린다. 편견에 의해 단절되거나 고립되고 정치, 사상적인 이유로 쫓기고 갇힌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스러운 일이다.23년전 일이 어제 일처럼 아프게 살아난다. 내란주요임무종사와 계엄법 위반으로 수배된 지 4개월만에 붙잡혀 보안대 지하실을 거쳐 갇힌 곳은 상무대 영창. 지금은 상무신도심으로 네온사인이 현란한 그곳에 흔적이라곤 이전 복원된 당시의 영창과 군사법정건물 뿐이다.

이 두 장소에서 5·18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부의 어떤 공식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감, 고문, 구타 등 반인륜적 잔혹행위에 대한 집단적 증언 채록도 단 한편 남아있질 않다.

밤낮으로 계속되는 검치(군검찰의 조사)와 수용한계의 5배를 넘긴 넘치는 수감자들, 무더위에다 기승을 부리는 옴…. 교수조차 화장실을 다녀오려면 신고식을 해야 했다. 그 뿐인가. 한강철교, 타잔 나무타기, 원산폭격, 곤봉구타, 철창타기…. 마지막 수단으로 자살까지. 그렇다 그곳은 지옥이었다. 우리는 모두 전쟁 포로였다. 새로 수감되는 이들은 '꿀꿀' 합창하면서 운동장을 기어 들어왔다. 굴욕이었다. 그 해 봄과 여름은 그렇게 비명만 인간임을 입증하면서 지나갔다.

군사재판을 남겨둔 9월 중순으로 접어들자 제법 밤 기온이 쌀쌀해졌다. 어느날 수감된 동료들을 관리할 책임을 맡은 소위 '소대장'인 내 눈을 의심할만한 일이 벌어졌다. 전등불에 날아든 땅강아지 몇 마리를 너댓명이 통째로 잡아먹고 있었다. 굶주림에 허덕이던 고교생들과 소년들이었다.

난 다음날부터 정량급식요구를 하며 단식을 주도했다. 그러나 돌아온 건 멸공봉 체조와 개머리판 구타와 얼차려 기합 뿐이었다. 절반가량의 호응이 있었지만 3일을 넘기지 못했다. 모두 허기져 있어 차츰 이탈자가 생겨났다. 한줌도 안 되는 식사로 어린 고등학생들의 얼굴은 누렇게 떠가고 있었다.

고교생들에게 식기당번을 맡겼다. 남는 밥 한 톨, 한 숟가락의 국물까지 모두 모아 화장실 입구에서 나눠먹도록 했다. 그때 그들이 흘린 피눈물과 눈빛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들도 이제 사십대를 넘어 중년이 되었으리라. 수감돼있으면서도 우리는 치열하게 싸웠고 헌병들의 눈을 피해 교수님들의 명강의를 들었고 때로는 장기자랑과 시사토론도 했다.

총상과 고문 후유증으로 그날 이후 평균 45일에 한 분씩 5·18 관련자들이 세상을 뜨고 있다. 처절하게 뭉쳐 싸우던 동지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보며 성년이 된 5·18을 지키고 있는지 궁금하다.

5·18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엄연한 담론이건만 어찌 잊을 수 없는 일이 이 한 가지뿐이랴.

송 선 태 5·18기념재단 기획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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