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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충류 농장' 운영하는 핸드릭슨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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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충류 농장' 운영하는 핸드릭슨 가족

입력
2003.05.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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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능동 어린이대공원 내 교양관에 들어선 '세계파충류 대공원'(www.reptiles.co.kr). 이 곳을 찾으면 먼저 커다란 양동이 하나를 들고 다니며 악어와 뱀, 도마뱀 등에게 먹이를 주는 파란 눈의 외국인을 만나게 된다. 미국인 도날드 제임스 헨드릭슨(43)씨. 190㎝를 훨씬 넘는 장신에 하얀 피부색을 가진 그는 뱀 종류와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엄연한 '파충류 전문가'다.그의 공식 직함은 '세계파충류 대공원' 고문. 공원에 전시된 온갖 종류의 파충류 반입과 사육, 관리, 번식 등을 자문하고 책임지는 역할이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늘 한국인 아내와 세 자녀가 버티고 있다. 아내 김영심(42)씨는 파충류 수입 및 육성·판매 회사인 '렙타일 시티'의 대표이고 자녀들 또한 파충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중학교 3학년인 막내딸 디애나(15)는 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 아들 도날드(22)와 다니엘(21)은 경기 시흥의 집 근처에 세운 국내 최초의 파충류 전문 사육농장에서 동물들을 돌보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한다.

이들은 스스로를 '파충류가족'이라 부른다. 악어나 도마뱀, 거북, 뱀 등 보통 사람들이 꺼리는 파충류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직업으로까지 택했기 때문이다. 파충류 공원을 오픈하는 데도 공헌했지만 파충류 관련 종사자들을 위한 교육에도 적극 나선다. 이쯤 되면 '파충류 전도사'라 칭해도 지나치지 않다.

파충류, 그리고 한국과의 인연

주한미군으로 판문점과 부산의 미군 부대 등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진 헨드릭슨씨는 1980년대 중반, 미국 텍사스에 살 때 아내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한 수족관에 들렀다. 어떤 어종을 살 것인가를 몰라 아내에게 전화를 했더니 대뜸 "그 뱀, 예쁘잖아요. 오렌지색 뱀…" 하는 말을 듣고 처음 뱀을 키우게 됐다.

군에서 전역한 그는 즉시 파충류 가게를 열었다. 어릴적 시골에서 자라 도마뱀이나 뱀을 잡는 데 익숙했던 그에게 파충류 가게는 그리 어려운 선택이 아니었다. 사업은 잘 됐고 90년대에는 텍사스 파충류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가 한국인 아내 및 세 자녀와 함께 한국을 다시 찾은 것은 20여 년 만인 2001년 7월.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몇 년간 아내의 모국에서 쉬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느날 이 가족은 재미 삼아 청계천 수족관 거리를 찾았다. 물고기를 사러 갔는데 이구아나 같은 파충류를 파는 모습을 보곤 주인과 우연찮게 대화를 나눴다.

"파충류는 이렇게 키우면 안돼요. 그러면 동물이 아파 해요."

"누가 그래요? 당신이 어떻게 알죠?"

"저는 미국에서 온 파충류 전문가입니다."

"아! 그래서 가끔 걔(파충류)들이 죽어 나갔구나…"

부부는 파충류의 특성을 알려주며 용품과 환경 등 당장 고칠 것 몇 가지를 지적해 줬다. 그랬더니 주인이 몇가지 파충류를 수입해주길 제안했고 부부는 흔쾌히 응했다. 그러나 막상 수입을 하자 주인은 원래 제시했던 가격보다 값을 크게 낮춰 불렀고 거래는 깨졌다.

"이왕 수입한 것을 헐값에 팔 수는 없었어요. 궁리 끝에 그 애(파충류)들을 키워 번식시키기로 결심했어요." 부인 김씨는 "그래서 파충류만을 키우는 농장을 만들기로 했고 판매도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 즈음 한국에서 파충류 붐이 일기 시작했지만 번식이나 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전문지식이 없는 것을 알고 교육과 지도에도 나서게 됐다.

그러던 차에 어린이대공원에 파충류 공원이 들어선다는 것을 알게 됐고 일익을 담당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전문가로서 한국에서의 파충류 붐 조성을 위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지난해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아마존 동물 전시회 때 자문역으로 일했던 경험도 도움이 됐다.

가족들의 파충류 사랑

헨드릭슨 가족의 파충류 농장에 가면 블루텅 도마뱀, 개코 도마뱀, 목도리 도마뱀, 왕뱀, 하얀잎 개구리 등 수많은 파충류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헨드릭슨씨는 100여평의 비닐하우스와 컨테이너를 활용한 공간에 환경과 번식, 육성에 필요한 시설 및 시스템은 모두 직접 개발했다.

농장의 전담관리는 아들들 몫. 특히 둘째 도날드는 거의 하루 종일 농장에서 새끼들과 씨름하며 보낸다. 먹이를 주고 온도와 습도를 맞춰 주는 것 등이 그의 주업무. "파충류와 항상 함께 하는 것이 즐겁다"는 그는 "앞으로 파충류 전문가가 돼 관련 사업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딸 디애나는 모델 활동을 하면서 파충류 대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뱀을 어깨에 매고 나가 아이들과 함께 노는가 하면 입구에 앉아 표를 받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아버지를 돕는다는 생각도 있지만 그녀는 "파충류 생긴 것이 너무 귀엽다"고만 말한다.

파충류가 좋은 이유

"파충류는 미국 유럽 등지의 동물원에서 이미 인기 최고의 동물들로 꼽힙니다. 징그럽고 부정적인 이미지는 옛말이지요."

헨드릭슨씨는 "파충류를 가까이서 보는 아이들이 처음에는 무서워하지만 금방 친숙해지면 더 귀여워 한다"며 "아이들 손에 파충류를 절대 가져가지 않고 아이들 손이 다가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도날드가 거든다. "여자애들이 더 잘 만져요. 한 명이 만지기 시작하면 다 따라 만지고 서로 더 만지려 하죠. 뱀이나 도마뱀 피부는 보기와 달리 매우 부드러워 촉감이 여느 동물에 비길 바가 아니다"고 알려준다.

일단 알고나면 파충류는 키우기도 어렵지 않다. 물과 먹이를 매일 줄 필요도 없고 작은 공간으로도 충분하기 때문. 부인 김씨는 "파충류는 키우는 데 손이 많이 안가고 비교적 깨끗해 마니아들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말했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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