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우위 지음·유소영, 심규호 옮김 미래M&B 발행·1만5,000원
중국의 예술비평가 겸 문화사학자 위치우위(余秋雨)는 '중국문화답사기' '세계문명기행' 등의 작가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다. 중국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동서 문명을 아우르는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씌어진 이 두 권의 책에서 그는 유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산문의 묘미를 한껏 보여준 바 있다.
신간 '천년의 정원'에서도 그 솜씨는 여전하다. '중국문화답사기'의 후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청나라 황제들의 여름 별궁이었던 피서산장, 1,000년 전 철학의 거장 주희가 제자들을 가르쳤던 악록서원 등 유적지에서 풀어내는 역사 이야기 11편을 담고 있다. 유적지의 일반적 묘사는 간략하게 그치고 그보다는 그곳에 머물며 자취를 남긴 역사 인물들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예컨대 피서산장에서는 이 별궁을 지은 강희제를 비롯한 청 황제들의 치적과 그들을 오랑캐로 멸시했던 한족들의 민족 정통론을 비판적으로 돌아본다. 악록서원에서 지은이는 1960년대 중국을 휩쓴 문화대혁명의 야만적 광풍을 쓰라리게 상기한다. 주희의 학설을 문제 삼아 탄압했던 권력의 어리석음과 그로 인해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학자들의 고통이 문화대혁명 당시 풍경과 겹쳐지면서 지은이의 글쓰기는 비감어린 분위기를 띤다.
책에는 헤이룽장(黑龍江)성의 발해 유적 이야기도 나온다. '해동성국'으로 불렸던 발해의 수도 상경용천부가 거란의 침입으로 완전히 불타버리고 무너진 성벽만 남은 폐허에서, 지은이는 도시의 운명에 대해 고민한다. 캄보디아 크메르 왕조의 앙코르 유적과, 플라톤의 저술 '티마이오스'에 언급된 사라진 고대 문명 아틀란티스를 떠올리고, 한편으로는 마천루로 가득 찬 현대 도시 홍콩의 화려함을 대비시키면서, 시공을 넘나드는 사유의 여행을 떠난다.
전작 '중국문화답사기' 서문에서 그는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산수는 단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인문적인 산수' 이며, 그것은 중국 역사와 문화의 오랜 매력과 이에 대한 내 자신의 장기간에 걸친 감응이 이루어낸 것들"이라고 말한 바 있다. "어느 곳에 가든 나는 온몸으로 역사의 기운을 느끼고 그것에 대해서 끝없는 감동과 찬탄을 금할 수 없다"고도 했다. 이러한 고백은 다분히 중화주의적 냄새가 짙긴 하지만, 그의 역사적 감수성이 유난히 예민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덕분에 독자들은 감성적인 에세이를 대할 때처럼 그의 책을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읽게 된다. 옛 사람이 서 있었을 바로 그 자리에서 자연과 삶과 역사를 대면하는 데서 오는 특별한 감흥을 그는 세련된 문장으로 전달한다.
옮긴이의 말대로 위치우위의 글에서는 인간과 자연과 역사가 한데 어우러져 뿜어내는 인문적 힘이 느껴진다. 깊이 있으면서도 딱딱하지 않기 때문에 편안하게 읽고 뿌듯함을 얻을 수 있는 책이다. 그의 또 다른 책 '유럽문명기행'도 곧 나올 예정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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