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종기 지음 문이당 발행·8,000원
'순간적이 아닌 인생이 어디에 있는가./ 내게도 지난 몇 해는 어렵게 왔다./ 그 어려움과 지친 몸에 의지하여 당신을 보느니/ 별이여, 아직 끝나지 않은 애통한 미련이여,/ 도달하기 어려운 곳에 사는 기쁨을 만나라./ 당신의 반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문을 닫고 불을 끄고/ 나도 당신의 별을 만진다.'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에서)
순간이 아닌 인생이 어디 있을까. 별이 점이 아니라 부피를 가졌다는 것, 미소 짓던 별이 어느 순간 떨면서 눈물을 흘린다는 것. 그 별이 시인을 흔들어 놓는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동생과 만나 손잡고 얘기 나누도록 한다. 시를 쓰도록 한다.
'별, 아직 끝나지 않은 기쁨'은 마종기(64) 시인이 펴내는 첫 산문집이다. 좋은 시인이 되고 싶다는 바람에서, "산문 한두 편을 쓰고 나면 시를 쓸 때의 언어적 탄력이나 긴장감을 되찾는 게 무척이나 힘들어서" 산문 쓰기를 아껴온 그이다. 아주 가끔씩 재미동포 사회의 신문과 잡지에 발표했던 글은 30여 년 만에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도미(渡美)한 지 37년 째다. 담배 열 갑 값을 월급으로 받던 인턴 생활을 하다가 담배 2,000갑짜리 월급을 준다는 미국 행을 결심했다. 미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일을 시작했으며, 그날 밤 여섯 명의 환자가 세상을 떠났다. 그 중 80세 백인 할머니의 죽음은 자신이 심전도를 잘못 읽고 시술한 탓인 것 같다는 죄책감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는 그이다.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는 것으로 애틋한 향수와 그리움을 달랬고, 그것이 그를 단단한 시인으로 만들었다.
산문집에는 이국에서의 고된 일상 속에서 차분하게 떠올린 사유가 담겨 있다. 가족에 대한 추억, 고국에 대한 향수, 미국에서의 체험 등이 평이하게, 그러나 깊이 있게 쓰여졌다.
늦은 밤 우연히 들른 조지아주의 목화밭이 시인을 세웠다. 흰 목화꽃이 어둠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날 밤 목화밭이 타일러 준 말이 가슴을 잔잔하게 데운다. '어두워지지 마라, 생활도 생각도 그리고 네 영혼까지도 어두워지지 마라.' 그날 밤 목화밭에서의 시인의 다짐은 머리를 맑게 깨운다. '어두워지지 말자, 언제나 어두워지지 말자, 무슨 일이 있어도 어두워지지 말자.'
그가 들려주는 많은 이야기에서 유독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시인의 겸허한 모습이다. 의사인 그가 인간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얻었을 법한 낮은 목소리는 안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 이탈리아 여행 중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성당에 갔던 그는 미사 중 눈물을 흘렸다. 프란체스코는 약속된 풍요와 명예를 버리고 가진 것을 다 나누어 주고 또 나누어 주어서, 맨발의 거지가 되는 것으로 2000년 전 예수의 삶을 실천하고자 했다. 너무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이 부끄러워져 눈물을 쏟았다는 그는, 해마다 제야에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로 시작되는 성 프란체스코의 기도문을 외는 것으로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다.
그의 시는 이런 정결한 자기반성으로 걸러져 나온다. 오하이오대 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해온 그는 지난해 은퇴했다. 고국에 자리잡고 싶다는 바람은, 그러나 아직까지도 바람에 머물고 있다. 은퇴 후 두 번째로 최근 귀국한 그는 곧 다시 떠난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